기획 > 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13-행운을 바라다

편집부   
입력 : 2018-03-30  | 수정 : 2018-03-30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

지혜가 가난한 사람에게 두 여인이 찾아오면

외딴 집에 홀로 살아가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럭저럭 돈벌이로 생계는 잇고 있지만 그닥 인생이 자기편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그냥저냥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는 사람이지요.

어느 날 밤, 그날도 하루 일을 마치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 때였습니다. 특별히 즐거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딱히 슬퍼할 일도 생기지 않았고, 횡재하지도 않았고, 횡액을 당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찾아온 친구도 없었고, 달려가고 싶은 사람도 없었던, 평범한 하루를 막 보낸 참이었습니다. 오늘이 그랬듯이 내일도 다르지 않겠지요. 남자는 잠자리에 들 채비를 마치고 불을 끄려 합니다. 그때,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에 누구 계시지 않나요? 문 좀 열어주세요.”
세상에, 여자 목소리였습니다. 고운 여자 목소리가 다 늦은 시각에 그의 문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쭈삣쭈삣 문가로 가서 걸쇠를 풀고 문을 조금 열었습니다.

“대체 누구요?”
“문 좀 열어주세요. 저, 오늘 하룻밤만 묵고 가게 해주실 수 없나요?”
그런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여인의 모습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곱고도 고운 젊은 여인이 문밖에 서 있었었지요. 입성도 매우 고상하고 화려했는데, 온몸에는 귀한 보석으로 치장까지 했습니다. 예쁜 얼굴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여인에게는 귀티가 흘렀습니다. 귀족적인 용모와 분위기를 갖춘 데다 안에 들여보내달라고 간청하는 목소리도 아름다웠고, 물론 말본새마저 우아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값비싸 보이는 보석으로 치장까지 했습니다.

이런 여인이 자신의 집 문밖에 서서 제발 들여보내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기도 하는군요. 행운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망설이다 놓치면 그보다 더한 불행도 없을 것입니다.

남자는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오.”
가볍게 문안으로 들어서는 여자를 바라보며 남자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무슨 일을 하시고, 어쩌다 이 늦은 시각에 이곳까지 오게 되셨나요?”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공덕천입니다.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 행복이 넘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안겨주는 신이지요.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돈을 벌게 해 달라, 건강하게 해 달라,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 행복하게 해 달라고 빕니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줍니다.”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행운이란 것을 만나보지 못한 남자로서는 이 늦은 밤에 자신을 찾아온 존재가 행운의 여신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감격했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고생 끝, 행복 시작입니다. 게다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찾아온 행운입니다.

남자는 서둘러 공덕천의 발 아래를 털어내고 앉을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공덕천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자리를 잡고 앉자 남자는 진심으로 공손히 허리를 숙였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비록 제가 공덕천님을 맞을 만큼 복을 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렇게 오신 것을 보면 분명 제가 언젠가 복을 짓기는 했나 봅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이 삐걱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돌린 남자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들어온 사람은 여인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불쾌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몸에서 악취가 풍겼습니다. 코를 감싸 쥐고 물러서게 만드는 이 여인, 게다가 차림새는 어쩌면 이렇게도 흉측한가요. 옷은 더럽기 짝이 없고 넝마를 대충 기워서 몸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또 어떻습니까. 거무튀튀한 안색에 얼굴에는 쭈글쭈글 주름이 가득하고, 눈곱이 끼고 침을 흘린 자국까지 닦아내지 않았습니다.
“나도 좀 들여보내 주시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나요. 이 여자가 입을 여니 입냄새가 지독해서 구토가 날 지경입니다. 남자는 화가 났습니다. 지금 막 자신을 찾아온 아름다운 공덕천과 함께 하려는 참인데 이 행운을 단번에 깨려는 듯 뒤이어 이런 ‘재수가 없는’ 여자가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공덕천 여신의 얼굴을 본 터인지라 남자의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그저 보기만 해도 불쾌하고 불길해졌습니다.

“당신은 누군데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밀고 들어오는 것이오?”
벌컥 화를 내며 묻는 남자에게 이 추레한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합니다.
“나는 흑암천입니다.”
남자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 목소리마저 저 지옥의 불길을 뚫고 나온 듯 듣는 이의 귀를 강하게 찔렀습니다.
“흑암천이라니요, 그렇다면 당신이 바로 그 어둠의 신이란 말입니까?”
“그래요. 나는 가는 데마다 그 집의 재산을 다 없애버리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손해와 불행을 안겨주는 신입니다.”
남자는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서둘러 찾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흑암천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목숨이 아깝거든 썩 나가라. 이 집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자기 앞에 흉기를 들이대며 나가라고 외치는데 흑암천은 태연스레 대꾸합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이로군요.”
“어리석다니, 재앙을 불러오는 신을 내쫓는 내가 어찌 어리석다는 것이냐? 잔말 말고 썩 꺼져라.”
“이보세요. 당신은 방금 전에 아름다운 여인을 집안에 맞아 들였습니다. 그 여인은 내 언니지요. 그런데 언니와 나는 한 몸입니다. 그러니 나를 내쫓으려면 저 아름다운 언니도 함께 내보내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 어리석은 거지요.”

그때 집안에 들어와 있던 공덕천이 아름다운 입을 열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내 동생을 들여보내주세요. 동생 말이 맞아요. 우리는 언제나 함께 다닙니다. 함께 한 자리에 있지요. 지금까지 나는 동생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에게 이로움을 안겨주고 동생은 그에게 손해를 안겨줍니다. 나는 그에게 좋은 일을 이뤄주고 동생은 그에게 불행을 안겨주지요. 우린 한 몸입니다. 그러니 나를 이 집안에 들이려면 동생도 들여보내주고, 동생을 내쫓으려면 나도 내쫓으시지요.”
남자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게 만드는 저 아름답고 기품 있는 공덕천만 들이고 싶은데, 하나만 들일 수 없는 법이라고 합니다.

대승경전인 ‘대반열반경’ 제11권 ‘성행품’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이 내용을 자신들의 칼럼에 아주 많이 인용하며 “행복과 불행은 한몸이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아라.”는 주제라고 덧붙입니다.

그런데 ‘대반열반경’에는 이 뒤에 남자가 또 한 사람 등장합니다. 앞서의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굳게 마음을 먹고 말하지요.
“나는 둘 다 거부합니다. 그러니 내 집에서 나가시오.”

두 여신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남자의 집을 떠났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공덕천의 출현에 설레기도 했지만 불행도 똑같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이런 판단을 내린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두 여신은 그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떤 집을 찾았습니다. 이 집은 앞서의 집보다 훨씬 가난했지요. 똑똑 문을 두드린 공덕천,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다 슬그머니 발을 들이미는 흑암천. 그런데 이 가난한 집 남자는 문을 활짝 열고 둘 다를 맞아들입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이런 나를 가엾게 여겨서 공덕천께서 찾아오신 걸 압니다. 그런 공덕천님의 마음이 고마워서 흑암천님도 저는 환영하는 것입니다. 두 분 다 오래오래 제 집에 머물러 주십시오.”

‘대반열반경’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남자를 ‘가난한 집’이라고 설정한 경전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의 가난은 재물이 아닌, 지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가 없기에 아무 것이나 덥석 잡고,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집착합니다. 좋은 점만 보고, 좋게만 생각하는 것도 살아가는 나름의 지혜일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난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면만 보고 가겠다며 굳이 그 이면의 실상에는 눈을 감는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우리는 결국 행운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불행에 덜컥 발목이 잡혀 울부짖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설마 자신에게까지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며 울부짖는 사람, 행운을 대할 때마저도 이마저도 무상하리라는 걸 꿰뚫는 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지혜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불행을 불러들이니 울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알고도 스스로가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