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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가 되어 하늘을 날다

편집부   
입력 : 2017-12-28  | 수정 :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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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보이지 아니한 것을 모르게 되어 생활이 이지러지니, 이것을 알고 종교로써 보이지 아니한 것을 바르게 하면 참으로 생활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된다.”(실행론: 5-4-1)

회당대종사의 가르침입니다. 진각72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보이는 모습의 본 모습과 들리는 소리의 숨은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겉모습만 보는데 익숙하지요. 그래서 늘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착각과 오해의 어리석음 속에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겉[色]과 속[空]을 함께 볼 수 있는 그런 밝음의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온갖 모습과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리기에 놀라지 않는 두려움 없는 삶이되기를 발원해봅니다.

‘세가와병’을 앓고 있었던 환자가 의사의 ‘뇌성마비’ 오진으로 13년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건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환자 A씨는 3살 때 어느 대학병원에서 뇌성마비 판정을 받게 되었는데 13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한 물리치료사가 병명에 의문을 갖게 되면서 의료진은 촬영한 MRI 사진을 입수하고 A씨의 병명이 뇌성마비가 아닌 세가와병 이라는 진단을 내리게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환자에게 일주일 동안 도파민을 투여하였고 그 결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발로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의사의 오진 판정으로 환자와 가족들에게 13년 동안이나 아픔과 고통,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지금은 20대 여성이 된 환자가 지금이라도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는 두 눈을 떴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세상은 더 이상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허덕이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세상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나 별천지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겉만 보면 깨닫기 전이나 깨달은 후나 똑같은 세상이었습니다. 여전히 농부는 밭을 갈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재잘거리며 뛰놀고, 사냥꾼은 짐승을 쫓고, 빨래터 여인들은 냇가에서 여전히 깔깔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붓다가 본 세상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부처님은 그 속에서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둘을 동시에 꿰뚫어 보았습니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깨달음의 눈을 뜬 붓다는 자신이 꿰뚫은 이치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삶의 고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을 내렸습니다. ‘무명’ 즉 어리석음 이었습니다. 붓다가 말한 어리석음의 정체는 ‘이치에 대한 착각’ 이었고 ‘유위무위 일체일과 이치에 지혜가 밝지 못함’ 이었습니다. 밝은 지혜의 눈으로 보면 우리 중생은 모두 본래 부처입니다.

속박과 얽매임의 중생이 아니고 대자유의 주체인 부처입니다. 뒤뚱뒤뚱 거리며 힘들게 살아가는 못난이 오리가 아니고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아가는 우아한 백조입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신을 오리하고 생각하고, 중생이라 착각하는 어리석음으로 고통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세가와병’은 정확한 진단만 받게 되면 치료가 충분히 가능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뇌성마비’ 라는 착각의 오진으로 13년의 세월을 안타깝게 잃어버렸습니다. 13년의 세월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착각을 인정하고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겉과 속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휠체어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두 발로 일어서서 당당히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탈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착각이라는 무명의 껍질을 벗겨내는 순간 오리의 뒤뚱거림에서, 중생의 헤맴에서 당당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새해대서원불공은 산림불공이며 사상을 없애는 공부입니다. 사상을 없애는 공부는 나를 내려놓는 공부입니다. ‘내 안의 고집’과 ‘내 안의 경계선’과 ‘내 안의 담벼락’을 허무는 과정입니다. 그걸 허무는 과정이 불공이고 수행입니다. 나를 내려놓는 공부는 여실히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공부입니다. 여실지자심(如實知者心)의 세계입니다. 착각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공부입니다. 오리의 삶에서 백조의 삶으로, 중생의 삶에서 부처의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우리 진언행자 모두 진기72년 새해대서원불공은 바른 사상(四相)공부와 육행실천으로, 무술년 새해에는 내 삶의 대개혁을 이루어내고 내 인생의 대변화를 성취하는 해탈의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