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칠존이야기-1.비로자나여래

밀교신문   
입력 : 2017-12-14  | 수정 :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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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에서 항상 빛나는 부처님

법신불 비로자나(毘盧遮那)라고 하면 우선 '화엄경'을 떠올릴 수 있다. 비로자나는 '화엄경'의 교주로서 이 경에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초기불교의 '잡아함경'에서도 비로자나의 명칭이 등장한다. 구나발타라역 '잡아함경'권22에는 ‘지금 비로자나가 청정한 광명을 드러낸다’고 하고 이 비로자나는 아수라의 왕인 라후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잡아함경'권40에는 ‘비로자나의 아들 파치아수라왕이 몸에서 온갖 광명을 기수급고독원에 널리 비추고 비로자나아수라왕이 게송으로 부처께 사뢴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부처로서의 비로자나가 아니라 여러 천신 가운데 하나로 보여지고 있다.

 

또한 바이로차나가 광명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태양으로 상징되는 고대의 태양신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힌두교에서 태양신의 아들을 비로자나신(神)이라 한다. 바이로차나는 태양의 광명이 두루 비추는 점으로부터 태양 자체의 이름의 하나가 된 것이지만, 원래 빛나는 것으로서 불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달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이 바이로차나는 아수라의 임금의 이름으로서 데바[天神]의 왕인 샤크라, 즉 제석천과 함께 그 이름이 우파니샤드에 나오고 있다. 이렇듯 바루나를 거쳐 이란의 태양신인 아후라에 연원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바이로차나라는 명칭에는 고대 인도와 이란의 태양신 숭배의 전통과 함께 힌두교적인 신관이 흡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로자나여래는 범어로 Vairocana-tathāgata이며 변일체처(遍一切處)ㆍ광명변조(光明遍照)ㆍ변조여래(遍照如來)라고도 번역한다. 밀교경전에서 보통 칭하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는 명칭은 마하비로자나여래(摩訶毘盧遮那如來, Mahāvairocanastathāgata)를 의역한 것이다. 마하에는 크고, 많고, 수승하다는 의미가 있고 비로자나에는 변조광명, 즉 태양의 의미가 있다. '금강정경'에는 비로자나여래와 마하비로자나여래의 구별이 명확하게 설해져 있는데 비로자나여래는 경의 교주이며 만다라의 중심에 위치하는 주존이다. 마하비로자나여래는 만다라 그 자체, 즉 금강계만다라를 예로 들면 비로자나여래를 포함한 5불ㆍ4바라밀ㆍ16대보살ㆍ8공양ㆍ4섭ㆍ현겁천불ㆍ항삼세명왕 등 만다라 전체 존들의 본성이고 일체 현현하는 것들의 배후에 있는 원동력, 또는 생명의 부여자라고도 말할 수 있는 편재자이다. 이것을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일체여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마하비로자나여래를 대일여래라고 번역한 것은 선무외(善無畏)삼장이 최초이다. 선무외의 제자 일행(一行)이 기록한 '대일경소'에는 '범음(梵音)으로 비로자나는 태양[日]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하여, 대일여래라는 명칭을 준 이유를 설하고 있다. 태양이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태양의 에너지를 그 근원으로 하기에 그 어느 것보다 가장 위대하고 절대적인 것이고, 그러한 존재에 여래를 결부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세간의 태양으로 가히 비유할 수 없다. 단지 그 적은 부분의 상만을 취하는 까닭에 대(大)의 명칭을 더하여 마하비로자나라 한다고 하여, 상대적인 현실계의 태양과는 다른 절대적인 광명의 특질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계의 태양에 없는 세 가지 특성이 대일여래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어둠을 없애어 두루 밝은 뜻[除暗遍明]이다. 

 

세간의 해는 방향을 나눔이 있어 만약 바깥을 비추면 안은 밝게 하지 못하여 한쪽에만 있고 다른 한쪽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오직 낮에만 빛날 뿐 밤에는 빛을 내지 못한다. 여래의 지혜의 햇빛은 이와 같지 않아 모든 곳에 두루하여 크게 밝음을 비춘다. 안과 밖의 차별이 없고 낮과 밤의 다름이 없다. 또한 해는 염부제로 가서 일체의 풀과 나무, 수풀이 그 성분을 따라 각각 자라나니 세간의 온갖 일이 이로 인하여 성장한다. 여래의 해의 빛은 법계를 두루 비추어 평등하게 무량한 중생들의 갖가지 선근 내지는 세간 출세간의 수승한 사업을 개발시키므로 이로 인하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다[能成衆務]. 또한 두터운 어두움과 혼미함이 태양을 가리나 이 또한 맹풍이 구름을 불어 태양의 빛이 드러남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처음 생겨남이 아닌 것처럼 불심의 태양도 또한 이와 같다. 오직 무명과 번뇌와 희론의 겹겹 구름이 덮힌다 해도 이로써 구경의 제법실상삼매를 줄일 수 없으며, 원만하고 밝아 끝이 없으므로 더할 바도 없는 것이다[光無生滅]. 이것은 대일여래의 보편적인 성격, 자비방편과 지혜반야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금강지(金剛智)삼장은 '금강정경의결'에서 비로자나를 최고로 높이 드러난 광대한 눈의 뜻이라 하여 최고현광안장여래(最高顯光眼藏如來)라 번역하고 또한 제불보살이 이를 의지하여 밝게 보며, 제불보살이 이 가운데에서 출생하며, 일체의 현성이 이 가운데 머문다고 표현하여 일체불보살의 근본인 비로자나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 주석가의 명칭 외에 밀호를 변조금강(遍照金剛), 무장금강(無障金剛)이라 하며 관정명으로 금강계여래가 있다. 

 

'금강정경'에서 일체의성취보살은 일체여래 즉 대일여래의 각성된 가르침에 의해 선정의 경지에서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을 수행하여 그에 의해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하는데, 그때 일체여래에 의해서 관정을 받아 ‘금강계(Vajradhātu)’라는 관정명을 수여받는다. 일체의보살마하살이 일체여래로부터 받는 금강계의 관정은 금강이라는 명칭이 말해주듯이 여래의 절대의 경지를 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금강계란 5지(智)를 원만구족한 불신이다. 일체여래의 신밀ㆍ구밀ㆍ의밀의 세계, 금강계를 현증한 일체의성취보살은 금강계라고 하는 명호로써 관정되고, 금강계보살이라 불린다. 일체허공계에 편만한 일체여래와 동등한 위를 얻은 보살은 일체여래에 대해 자신에게 일체여래의 금강신을 현증하는 뜻을 선언한다. 일체여래의 경계를 얻고 부처의 몸을 원만히 하고, 다시 일체여래의 가지를 입어 4지(智)를 갖추고 금강계여래로 되는 것이다. 금강계여래가 머무는 도량은 대우주 그 자체로서 모든 경계가 그대로 여래의 세계로써 신ㆍ구ㆍ의 삼밀의 작용으로서 구현되는 세계가 금강계이다. 그것을 깨달아 알고 모든 곳에 무애자재하게 머무는 것이 금강계여래라는 명칭이다.

 

따라서 금강계여래, 즉 비로자나여래가 머무는 자리는 어느 곳이나 금강좌이며, 동시에 사자좌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자가 온갖 짐승들의 왕으로서 모든 동물 가운데에서 두려움없이 다니는 것을 비로자나불이 제법의 왕으로서 제법 가운데 변화무애한 것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색은 흰 거위와 같고 형태는 맑은 달과 같다. 일체의 상호가 모두 다 원만하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머리털을 늘어뜨리며, 비단같은 묘한 천의(天衣)를 허리에 두르고 소매를 끌어서 웃옷으로 삼는다‘고 그 형상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석가여래와는 다른 보살의 모습이다. 비로자나여래의 인계는 지권인(智拳印)으로서 보리인(菩提印)ㆍ여래권인(如來拳印)이라고도 한다. 지권인에서 왼손은 소우주, 오른손은 대우주를 상징한다. 왼손과 오른손을 합하는 것에 의해서 ‘이(理)와 지(智)가 둘이 아님’ㆍ‘중생과 부처가 동일함’ㆍ‘미혹과 깨달음이 한몸인 이치’를 나타낸다. 삼매야형은 금강계자재인이라고 이름되는 탑인(塔印)이다. 삼매야회에서는 가로로 누운 오고저 위에 탑을 놓고 있다. 대일여래의 상징을 탑으로 한 것은 전통적인 불타의 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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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