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7)

편집부   
입력 : 2017-12-14  | 수정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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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가르치다

붓다가 아들에게 물려준 재산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뒤 고향 카필라밧투를 찾았을 때 아들 라훌라를 만났습니다. 당돌하게도 라훌라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 제게 재산을 물려주세요.”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진리의 스승인 부처님에게 도저히 요구할 수 없는 것이 어린 아들 입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인 부처님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네게 재산을 물려주마.”
그리고 사리불 존자를 불러서 이 아이의 머리를 깎이라고 일렀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으리라 생각한 어린 아들은 그길로 스님이 되어버렸습니다. 원한 적은 없었지만 이제는 왕자님이 아니라 스님이라 불리는 신세가 된 라훌라 속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부처님의 친아들이라고 하면 승가 안에서는 금수저 중에서도 금수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라훌라를 당신의 친아들로서 특별히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느 어린 수행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여겼습니다. 경전을 봐도 부처님과 라훌라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는 끈끈한 만남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길에 먼저 도달하고 그 길을 일러주는 스승과, 뒤늦게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제자의 관계만을 경전에서는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라훌라를 볼 때면 무조건 ‘부처님 출가 전의 외아들’이란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라훌라를 대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더 조심스럽고 공손해졌습니다. 부처님의 출가 전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으레 뒤에서 소곤댔습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원하지도 않은 출가를 ‘당한’ 라훌라는 수행자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몸가짐을 익히기보다는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서 제멋대로 행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경전 주석서에서는 라훌라에 대해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라훌라의 행동은 부처님과 승가에 굳은 믿음을 지닌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어느 사이 그의 행동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아니, 자기가 부처님 친아들이면 다야? 저렇게 함부로 행동해도 괜찮은 거야?”
“아주 버릇이 없어. 사람을 가지고 놀잖아!”
“라훌라가 하는 말은 믿지 마. 골탕 먹기 딱 좋거든.”
“부처님 친아들만 아니라면…”

승가 내에서 들려오는 라훌라에 대한 그런 좋지 않은 소문을 부처님께서 듣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한낮의 명상에서 일어나신 뒤 라훌라가 머물고 있는 숲을 찾았습니다. 라훌라는 멀리서 부처님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기뻤습니다. 그는 한달음에 달려 나가 부처님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스승이시자 아버지의 발을 씻겨 드리려고 물을 받아 왔습니다. 

부처님은 라훌라가 정성스레 두 발을 다 씻겨 드리자 물그릇을 기울여 물을 조금 쏟은 뒤에 물었습니다.
“라훌라야, 너는 지금 물그릇에 물을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보았습니다.”
“라훌라야, 일부러 거짓말하고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도 이와 같다. 그런 사람은 수행자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렇게 그릇에 조금 남은 물만큼이나 하찮은 사람일 뿐이다.”
부처님은 다시 물그릇을 완전히 기울여 물을 다 비운 뒤에 다시 물었습니다.
“라훌라야, 너는 조금 전에 남아 있던 물이 다 버려진 것을 보았느냐?”
“예, 세존이시여, 보았습니다.”
“라훌라야,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도 이와 같다. 그런 사람은 수행자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바닥에 다 버려진 물처럼 쓸모가 없다.”
다시 부처님은 빈 물그릇을 바닥에 뒤집어엎으신 뒤에 물었습니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그릇이 뒤집혀진 것을 보고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보았습니다.”
“라훌라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도 이와 같다. 그런 사람은 수행자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뒤집혀진 그릇처럼 쓸모가 없다.”
다시 부처님은 엎어진 물그릇을 바로 세운 뒤에 라훌라에게 물었습니다.
“라훌라야, 너는 이 물그릇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있느냐?”
“예, 세존이시여, 보았습니다.”
“라훌라야,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도 이와 같다. 그런 사람은 수행자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물이 비워진 그릇처럼 바닥나고 빈 존재일 뿐이다.”

부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코끼리를 비유로 들면서 말씀하십니다.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코를 다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용맹하게 전쟁에 임하더라도 그래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을 무찌른다고 하더라도 코끼리는 자신의 코를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쓴다. 자신의 코가 곧 자기 목숨과도 같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숨처럼 소중한 코를 함부로 여기고 휘두른다면 사람들은 이 코끼리가 하지 못할 짓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이처럼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코를 함부로 휘두르는 코끼리와 같아서 사람들은 그를 보고 그 어떤 사악한 짓도 함부로 저지를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맛지마 니까야> 61번째 경인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의 내용입니다. 이 경을 음미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아버지인 부처님이 외아들 라훌라에게 당부하는 미덕이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은 계를 깨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신도 모르게 계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계율을 어긴 이후,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난 이후의 마음가짐입니다. 부처님의 당부는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물그릇에 조금 남은 물처럼 하찮은 존재이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 버려진 물처럼 의미 없는 존재이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엎어진 그릇처럼 쓸모없는 존재이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텅 빈 그릇처럼 어떤 훌륭한 공덕도 담고 있지 못하는 존재이다.
심지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어떤 악한 짓도 거리낌 없이 저지를 것이다.

부처님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출가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매정한 아버지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아버지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외아들에게 세상에서, 아니 세상 밖에서라도 가장 고귀한 것을 안겨주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다 똑같이 울고 웃으며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세상. 적어도 당신의 자식은 특별히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출가수행의 길을 권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출가하여 수행자의 삶을 살기만 하는 것으로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끝없이 자신을 성찰해서 스스로도 완성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행복을 일러주는 스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로운 사람-이것이 바로 아버지인 부처님이 아들에게 바라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한 미덕이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뭔가 묻은 것이 없는지 살펴보듯이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지난 행동도 돌이켜 살펴야 하고, 현재 어떤 행동을 하고 있어도 늘 살펴야 하며, 장차 어떤 행동을 하려할 때에도 충분히 살피고 또 살펴서 행동하라고 일러줍니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동서고금이 한결같습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런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자식사랑이 더욱 도타운 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자식 사랑이 간절하다 못해 그만 넘쳐버리고 어긋나버려서 문제입니다. 대학교수인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논문 공저자로 삼아서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학교에서 자식이 벌인 사소한 갈등에 변호사를 대동해서 법대로 처리하자며 들이닥치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남보다 더 풍족하게 살아갈 자식입니다. 부모의 재산과 권세만으로도 자식은 장차 여유롭게 살아갈 텐데 그런 자식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라는 미덕을 안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처님이 친아들에게 물려준 재산이 무엇인지 그것도 좀 챙기는 부모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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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