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 알기쉬운 교리문답 64

편집부   
입력 : 2017-12-14  | 수정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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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계(持戒)’란 어떤 걸까요?

호박과 사과 중 어느 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사과를 좋아한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이는 고정관념이지요. 사과가 더 좋다는 근거는 사실 없어요. 그냥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크기부터 보세요. 호박이 사과보다 훨씬 더 크지요. 영양가를 따져 봐도 호박이 사과보다 훨씬 우월하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과를 더 선호합니다.
똑같은 인물 사진도 그것을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한 그룹은 이렇게 묘사했대요.

“깊게 패인 두 눈을 보면 마음속에 증오가 있을 것 같다. 튀어나온 턱은 반성할 기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른 그룹은 이렇게 묘사했다는 거예요.
“깊은 눈은 사상의 깊이를 보여 준다. 튀어나온 턱에서 강한 의지력이 느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 심리 실험을 주도한 외국의 심리학자는 한 그룹에게는 사진 속의 인물이 지명 수배자라고 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과학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피실험자들은 같은 인물임에도 사전 정보에 따라 극과 극의 판단을 했던 것이지요. 이 실험은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인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평소에 가졌던 생각이 앞으로의 사고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거예요.

자기 관념에 사로잡혀 남의 관점에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아집(我執)’이라고 말합니다. 아집에 사로잡히면 눈 뜬 장님과도 같아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지요. 누구나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다 보니 내 견해를 지키려는 고집, 즉 아집이 생겨나게 되는 거잖아요. 내 고집대로 되면 좋겠지만, 내 고집에 반대하는 사람과 싸우게 되니 괴롭지요. ‘옳다’, ‘그르다’라는 분별을 잠시 내려놓으면 되는 건데, 그게 잘 안 되니 마음이 평온할 수 없는 거예요.

선가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두 스님이 길을 걷다가 홍수로 물이 불은 강을 지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마침 물이 너무 깊어 강을 건너지 못한 채 주변을 오르락내리락하는 한 여인을 목격하게 되었지요. 그때 한 스님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하더니 그 여인을 업어서 강을 건넜어요.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던 길을 걸어 절에 도착했지요. 그런데 일주문에 이르자 도반 스님이 이렇게 따졌습니다.
“수행자라면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여인을, 그것도 등에 업고 강을 건널 수가 있는가?”
그때 여인을 업었던 스님이 남긴 말이 참 명언입니다.
“아니, 자네는 아직도 여인을 업고 있는가? 나는 그 여인을 내려놓은 지 한참 됐는데….”

진정한 ‘지계(持戒)’란 어떤 것일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오직 본심으로 행한다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지계는 자아의 아집을 제거하여 이기적 행동을 제어한다. 나아가 자신까지도 희생하는 헌신적 생활을 하게 한다.” (‘실행론’ 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