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지상법문

지상법문 20

편집부   
입력 : 2017-11-27  | 수정 : 2017-11-27
+ -

비움을 채움으로 채움을 비움으로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하는 겨울이다. 기관지가 선천적으로 약해 찬 음식, 찬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무렇지도 않다가 살짝 긴장만 해도 기침을 한다. 추운 날 등이 시려 오면 목에서 나는 소리, 빨개지는 얼굴, 조금만 차가운 물이나 음료를 마셔도 나오는 기침.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는 날에도 약한 기관지 탓에 시원한 빙수도 먹지 못한다.

사 남매 중에 아무도 나처럼 고생하는 이는 없다. 7년 전 갑자기 찾아온 천식. 기관지는 약했지만, 그동안 증상 없이 잘 지내왔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몸이 약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약해진 내 몸에 나타난 증상은 나를 엄청 괴롭혔다. 숨조차 편하게 쉴 수 없어 앉아서 잠을 청하며 힘겨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병원과 약에 의존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왜 이렇게 아프지? 현실로 분명 아픈 이유가 있듯이 진리로도 분명 아픈 이유가 있는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지?

아픔에 빠져 지내는 동안 내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다. 심지어 어린 시절 백일이 지나고 갑자기 나타난 기침 증상을 왜 엄만 고쳐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수많은 약을 먹고 아침마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한 것이 방문 앞 툇마루에 놓여있던 시커먼 익모초 달인 조청을 커다란 밥숟가락에 한 숟가락씩 먹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온갖 약을 찾아서 다니고 병원에 다니며 기침약을 먹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엄마를 원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순간, 참으로 어리석은 나를 보았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잘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 하는 것들은 놓아 버려야 한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라는 글귀가 생각났다. 나 스스로 아니라고 아무리 생각하고 말을 해도 내 몸은 이미 반응하고 나를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인연 인과를 깨우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나를 아껴주시던 어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주시며 “사람을 원망하지 마라, 그리 원망하고 있으니 아프지!”라고. 머리에 한 대 맞은 꿀밤 맛이 어찌나 아프던지 순간 ‘이게 뭐지?’ 하면서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맞다. 그래 정신 차리자. 내가 지금 이렇게 어리석음과 아픔에 빠져 지혜롭지 못하구나.’ 큰 스승님께서 주신 꿀밤이 진정한 깨우침을 주는 꿀밤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그 이후, 많은 일들 속에 일어난 일들을 그저 내 잣대로 생각하고 평가하고 그 일들의 대상이 된 모든 이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도 보았다. 더 넓은 마음으로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고 생각하려 하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일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과 미움은 진심의 불꽃이 되었고, 뜨거운 열로 내 몸의 약한 부분을 힘들게 한 것이다. 진언행자가 되어 마음공부 한지도 얼마인데 아직도 나의 과거를 붙들고 현재의 고통을 고스란히 다 마주하며 아파하는지도 보았다. 보이는 현상세계에서 나타나는 내 몸의 반응들을 지배해 왔던 마음을 내려놓기로 정하고 양약을 끊고 흡입하던 천식약도 점차 줄여갔다. 보이지 않는 진리 세계에 내 마음을 담아 나의 인연과 인과를 깨치고 또 생각하며 불공 정진하였다. 정진하는 속에 나의 마음이 곧아지기 시작하고 편안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힘들었던 천식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서 흡입하던 약까지도 쓰지 않게 되었다. 내 몸의 고통을 통해, 내 마음의 아픔을 통해 자리하고 있던 나의 고질

병은 이렇게 나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떤 대상을 통한 불평과 불만은 곧 나의 고통으로 마주하게 된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과거의 일을 계속 생각하면서 그 생각 속에서 잘못된 인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들고 안고만 있을수록 나의 마음과 몸의 고통의 무게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나를 통해 상대를 보고 상대를 통해 나를 본다.
12월 마지막 한 달의 시작점에서 모두가 내 마음, 나 자신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좋은 말, 좋은 행동, 좋은 마음으로 나를 먼저 바라보자. 지금 나의 인연과 일들을 받아들이자. 육자진언 염송으로 지혜를 밝혀 2017년을 잘 비워내고 2018년을 잘 채울 수 있는 12월을 만들자.

정진심 전수/탑주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