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 교리문답 63

편집부   
입력 : 2017-11-27  | 수정 :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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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어떻게 지어나가야 할까요?

인연이란 건 참 묘합니다. 흔히 ‘한 눈에 반했다’는 말을 하잖아요? 이성끼리 서로에게 호감이라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되면 사랑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지요. 그러나 그 좋던 인연이 틀어질 때는 또 어떻습니까? ‘갑자기 하늘이 노랗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을 하듯이, 틀어지는 순간도 역시 찰나거든요. 이렇게 인연이 맺어지거나 틀어지는 건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져 버립니다.

그러나 만남과 이별의 순간은 잠깐이지만,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이나 연민, 원망과 분노는 긴 세월을 두고 자꾸 생각나고, 돌아보고, 되새김질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정작 중요한 건 바로 만남과 이별 사이에 놓인 그 모든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연을 소중히 꾸려 나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는 거예요.

경북 상주의 ‘누렁이’라는 황소는 평소 자신을 아껴주던 이웃집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정을 못 잊어 묘소와 빈소를 찾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을회관 앞에는 ‘의로운 소’의 비석이 세워졌고 동화책으로도 소개가 되었습니다. 하찮은 미물도 이렇게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좋은 인연을 지어나갈 줄 알아야겠지요.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선연을 맺는 것 못지않게, 악연을 풀어내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인연을 한 번 잘못 만들면 그걸 푸는 데만도 긴 시간이 소요되잖아요.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사람 관계는 더욱 복잡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인연의 주인공으로 살아야지, 쉽게 인연을 끊거나 피해 다니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늘 좋은 인연 짓기를 서원해야 합니다. 행여나 별 뜻 없이 “죽겠다, 미치겠다, 돌겠다, 답답하다…”하고 자꾸 구업을 쌓게 되면, 정말 그런 인연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업의 종자를 뿌리는 셈이에요. 특히 현대는 물질사회인지라, 우리는 남들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경우에 ‘빈곤’이라고 하는 고통에 유독 민감합니다. 자금이 융통되다 막혀버리면 속된 말로 “돌아가시겠네!”라고 가슴을 치며 구업을 짓곤 하잖아요.

하루 착한 일을 했다고 복이 곧 오지는 않지만 화는 저절로 멀어집니다. 또 하루 나쁜 일을 했다고 화가 곧 오지는 않지만 복은 저절로 멀어지게 되어 있어요.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마치 정원에 자라는 풀처럼, 복이 자라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매일 자라고 있는 것과 같아요. 반면에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처럼, 복이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매일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인 거예요.

인연을 어떻게 지어나가야 할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악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누르고 억제하며 선한 생각이 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부간의 정이 좋다고 하나 인연 다하면 이별이 기다리고, 재물이 좋다 하나 인연 다하면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놀음이 좋다 하나 명 다하면 이 몸이 없어지니 가장 즐거운 것은 고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정법이다.” (‘실행론’ 4-6-3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