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50

편집부   
입력 : 2017-11-10  | 수정 :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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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행실천

“육행 중 하나를 실행하면 다른 행을 이끌고 하나라도 빠지면 다른 행을 방해한다. 희사 지계 인욕을 행하면 몸이 평안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이 되며, 정진 선정 지혜를 행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상구보리(上求菩提)가 된다. 부처님 앞에 예배하고 마지불공(摩旨佛供)을 올리는 것은 숭상불교이며, 불교의 대강령(大綱領)인 육바라밀 실천은 오직 실천불교가 될 것이다. 육바라밀 실천은 희사 계행 하심 용맹 염송 지혜이다.”(실행론 제3편 제6장 제3절)

부처로 사는 세상

"1960년대에 썼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를 찾고 있는데, 혹시 있을런지요? 어느 학년 것이나 상관은 없습니다만…….”

머리가 하얀 백발의 노장 손님이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서 조심스러운 듯이 말을 꺼냈다. 서점을 찾아온 목적을 밝힌 것이었다. 그런 책이 있기나 할까, 하고 반신반의하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투의 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기에 없어도 그만 이라는 담담한 어조였다.

법선은 손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책을 찾아 나섰다. 헌책방 안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헌책들로 성(城)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층층이 쌓여 있는 헌책은 종류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말을 실감케 할 정도로 많았다. 수량에 있어서도 해수욕장의 모래알갱이만큼 넘쳐났다. 그 많은 헌책이 쌓여 있는 사이사이로 나 있는 길은 미로에 다름 아니었다. 한 사람이 겨우 들락거릴 정도로 좁고 긴 통로를 오갈 때마다 법선은 화엄일승법계도를 떠올리곤 했다. 헌책방을 찾아온 손님들이 주문한 책을 찾아주면서 제 나름대로 수행하는 사람이라도 된 듯한 시늉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행은 둘째치고 헌책방 점원으로 일한 연륜이 연륜이었던지라 법선의 책 찾는 실력은 가히 알아 줄만했다. 사장도 못 찾을 책을 법선은 이내 찾아내는 혜안을 가진 듯 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으리만큼 법선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헌책을 찾아내는 실력이 수련처럼 깊어지면서 밝은 눈을 가진 것 같았다.
“5학년 국어 책이 마침 있습니다. 선생님.”
법선이 단박에 책을 찾아서 백발의 노장 손님 앞에 나서면서 일갈을 터트렸다. 생각지도 않았던 듯 법선의 말에 백발 노장 손님은 화들짝 놀라면서 어리둥절해 했다. 간절했던 것을 얻은 기쁨의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법선의 실력이 처음부터 이 경지에 이르렀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헌책방 점원으로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법선 앞에 드러난 헌책 더미는 아무래도 오르지 못할 태산과 같아 보였다. 그 속에서 필요로 하는 책을 찾아낸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자석도 없이 바늘 찾는 격에 다름 아니다 싶었다. 손님들이 찾는 책을 제때 못 찾으면 사장이 대신 찾아서 손님을 돌려보내고 난 다음에 돌아오는 후사는 끔찍했다. 갖은 욕설을 듣고 정강이를 걷어차이며 머리통을 가격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수난과 수모의 연속이요, 나날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어림도 없을, 종업원에게 가해지는 사장의 갑질이 위험수위를 넘나들던 때였다.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당하기만 하면서 그러려니 하고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바쳐온 헌책방 살이 인생이 법선의 어린 시절이었다.

헌책방에서 책 찾기의 달인에 가까울 정도로 법선의 삶이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다. 그 날도 사장으로부터 한바탕 욕설을 듣고 나서 폭언과 발길질을 피해 책 더미에 기대선 채 멍 때리고 있을 때였다. 화를 삭일 새도 없이 쏟아지는 과중한 업무에 넌더리가 났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서가를 등지고 기대섰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을 정도로 끓어오른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법선이 그렇게 멍 때리기 시작하자 사장의 입도 금새 조용해졌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법선은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다했다. 사장에게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어 그를 해할 수도 있다는 상황까지 가정하면서 뒷일을 미루어 생각해 보았다. 헌책방에서 내 쫓기면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것은 고사하고 잠자리를 의탁할 데조차 없는 신세가 처량해지기까지 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참을 수 있었던 까닭은 잠자리 때문이었다. 책방에 딸린 골방이지만 하루 종일 지친 몸을 눕힐 때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고맙게 여겼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욕심에 눈멀어 먼 곳만 쳐다보는구나. 큰 것에만 관심이 있어 작은 것을 눈여겨보지 못하니. 쯧쯧. 태산이 높다고 먼 산만 바라보다가 발아래 나뒹구는 진짜배기를 보지 못하니 그대가 바로 눈 먼 자가 아니고 누구를 보고 눈멀었다고 하겠는가. 큰일 하기는 글렀다.”

법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을 꾼 것도 아닌데 우레와 같은 큰 소리가 귀를 의심케 했다. 단순한 고함이나 질책만이 아니었다. 조근조근 타이르는 것 같으면서도 매섭게 꾸짖는, 종잡을 수 없는 소리였다.
“만약 유위 세력으로 널리 증익 못 하거던 무위법에 주하여서 보리심만 관할지라. 불이 이에 만행 갖춰 정백하고 순정한 법 만족한다 설하니라.”

회당대종사의 말씀도 또렷하게 생각났다. 심인당에서 자주 들었지만 그 때는 제대로 듣지 못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말의 뜻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간절하니까 얻어지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손님이 구하는 책을 찾아서 당당하게 건네 줄 때는 덩달아 기쁘고 즐거웠다. 그만한 보람을 어디에서 맛보고 찾을 것인가. 법선은 그 재미를 알았다. 철부지 같았던 시절 사장의 갖은 구박과 질책도 아랑곳없이 묵묵히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쏠쏠한 재미를 알고 즐길 줄 알면서부터 더 이상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었다. 힘든 일이 아니라 즐거운 게임과 같은 것이었다. 퍼즐을 맞추듯이, 보물을 찾듯이 마냥 신나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앉아 쉬어본 적이 없어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심에 있었다. 무엇이든지 진심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행동하며, 진심을 다하는데 있었다. 진심을 쏟는데 다른 것은 끼어 들 틈조차 없었다. 남을 의식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과 상황에 진심을 다하면 그만이었다.

생각을 바꾼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매사에 있어서 진심을 찾고, 진심으로 행위 할 수 있게 됐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그른 마음 없이 긍정함이 삼밀’이라고 한 말까지 정확하게 이해가 되면서 그 참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사장의 꾸지람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몸조차 가벼워지는 느낌이 전신으로 전해졌다.

‘마음이 부처’라고 한 말을 믿고 깨달으며 마음을 다해 일하니 하는 일마다 부처가 하는 일이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실제로 하는 일마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많았다. 크게 마음을 쓰거나 애를 먹지 않고도 생각을 일으킬 때마다 원하는 바를 쉬 얻을 수 있었다. 마음만 내면 현실은 그대로 주어지는 것 같았다. 고구마 줄기처럼 일 처리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원리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부처로 사는 세상이 이런 세상인가 싶었다.

정유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