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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손 천의 눈으로…

편집부   
입력 : 2017-11-10  | 수정 :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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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손을 따스히 내밀면 / 나의 두 손은 천개의 손이 되리라 / 내가 두 눈을 크게 멀리 뜨면은 / 나의 두 눈은 천개의 눈이 되리라 / 천수천안 내가 천의 손 천의 눈으로 / 님처럼 관세음 온 누리 보살펴 주고 / 님처럼 관자재 온 세상 껴안아 주고 / 한 몸 한 마음 이루어 지이다.

서원가 ‘천의 손 천의 눈’의 노랫말입니다. 천 개의 손,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이 되고 관자재보살이 되어지고자 하는 발원을 담은 서원가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세간의 모든 소리를 다 듣고 고통의 수렁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의 아픔을 다 치유해주는 보살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잘 들어주는 것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누군가 내 말을 잘 들어준다면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입니다. 내 마음에 공감해주는 그 친구가 바로 관자재보살입니다. 내 슬픔을 안아주는 부모님이 관세음이고, 내게 따뜻한 눈빛과 웃음을 보내주는 친구들이 관자재이며, 내게 친절을 베푸는 도반(道伴)들이 바로 관세음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의 소리나 슬픔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여 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공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소리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소리라면, 나를 욕하는 소리이고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소리이고 나를 험담하는 소리이고 내 허물을 들추는 소리이고 나를 아프게 하는 소리라면, 그 소리는 들어주기가 어렵고 듣고 있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리들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관세음보살이겠지요. 그리고 그 소리들에 반응하는 내 내면의 소리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불쾌한 말에 영향을 받아서 아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슬퍼하는 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하고 그러한 나를 보담아주고 치유할 수 있어야 진정한 관세음보살이고 관자재보살입니다. 즉 내가 내 자신을 아껴주고 치유할 수 있어야합니다. 내가 내 자신에게 관세음보살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참으로 해탈의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앞뒤가 꽉 막혀버린 귀머거리에서 벗어나서 나를 바르게 치유한다는 것이고, 내 불성의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불성의 싹을 틔운다는 것은 진리의 일이든 현실의 일이든 해탈의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서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이룰 수 있는 인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진언행자들은 육자진언 삼밀수행을 통해 귀머거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힘들어 하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소리를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점점 더 잘 듣게 되면 자연히 다른 존재의 소리도 잘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연습과 훈련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은 모든 감정의 흐름은 다른 어떤 것처럼 조건과 환경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렇게 분명 스쳐지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상(無常)이고 공(空)의 이치입니다. 우리는 내 내면의 소리를 바로 듣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보담아 주고 치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경험하되 경험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고 삶 속에서 삶에 걸리지 않는 존재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대자유인이 되어 걸림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는 일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내 내면의 소리를 내 내면의 모습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삶의 기술입니다. 마음은 다스리기가 매우 힘이 들지만 한번 잘 길들이면, 길들여진 마음은 늘 건강과 행복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혜택은 평생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진언행자들은 삶의 기술을 습득하고 훈련하는 ‘옴마니반메훔’ 진언염송으로 매일매일의 하루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원합니다. 내 마음 잘 다스리는 훌륭한 기술인이 되어 참 주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