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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혹은시시( 詩詩)한 세상

편집부   
입력 : 2017-09-29  | 수정 :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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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군.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었는가? 라네.” 영화 <버킷리스트>에 나오는 대사이다.

최근 수명이 길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질병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웰다잉)? 라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죽음은 이제 먼 훗날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내 앞에 불쑥 나타날 수 있는 그래서 이젠 죽음도 준비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각종 질병의 증가와 1인 가구의 확산으로 고독사가 사회 전면에 부각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웰다잉(well-dying)의 붐은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과 삶을 되돌아보고 아름답고 평온하게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려는 요즘 사회의 한 트렌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은 자신의 생을 뜻깊게 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은혜 갚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웰다잉 십계명’도 등장했다. 첫째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둘째 건강 체크하기, 셋째 유언장, 자서전 작성하기, 넷째 고독사 예방하기, 다섯째 장례계획 세우기, 여섯째 자성의 시간 갖기, 일곱째 마음의 빚 청산하기, 여덟째 자원봉사하기, 아홉째 추억의 물품 보관하기, 열째 사전 의료의향서 작성하기 등 죽음을 대비한 ‘하늘 소풍 이야기’와 ‘묘비명 작성하기’ 등 이색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나오고 있다.

13년 전, 돌이켜보니 대전서 교화할 때이니 꽤 오래전 일이다. 전남 보성에 자리한 대원사로 야외법회를 갔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대원사 경내에 티베트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내 관심의 집중적 대상이었던 인상 깊었던 공간으로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대원사 주지스님인 현장 스님께서 티베트, 몽골, 중국 등을 15년간 순례하면서 수집한 불상, 경전, 만다라, 밀교 법구, 민속품 등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줄곧 내 발길이 가닿아 멈춘 것은 지하 1층의 중국의 생불로 추앙받고 있는 신라왕자 출신의 김교각 스님의 기획전시실과 저승 체험실, 즉 죽음의 공간인 ‘관’에 들어가 누워 보는 체험이었다. 이른바 미리 죽음을 체험해 보는 이색적 체험이었다.

어떤 문학자인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누구이시던가 하루에 한 번씩 ‘관’ 속에 들어가 누워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삶에 대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고 끝없이 삶이 숙연해지는 체험을 매일 몸소 해 본다는 것이다. 어떤 죽음에 대해서도 자학과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고 나와의 이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사회적 관계망으로 들어가 남을 위해 살아가 볼 것, 그리하여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며 좋은 이별과 맞설 것을 감히 제안해 본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처럼 시시(詩詩)한 세상을 향해 당당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루게릭병을 앓았던 사회심리학자이고 교수였던 모리의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된다.”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책 내용의 한 구절도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요 몇 년 사이 20년 교화를 하면서 특히 부산에 와서 매년 1년에 세네 번꼴로 장례를 치르고 있다. 어느 날 한 교도분께서 “환자에게 미리 병명을 알리고 평화롭게 마지막 가는 길을 정리하고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스럽고 혼란스럽다.”라는 심정을 토로해왔다. 이럴 때마다 나는 늘 고민에 빠지고 만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를 해야 할까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좋은 이별을 떠올리며 시시(詩詩)한 세상을 향해 나만의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삶은 죽음에서 생긴다. 보리가 싹 트기 위해서는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정의는 양보이고, 법이 가져다주는 정의는 처벌이다.”라는 간디의 명언 또한 되새겨볼 만하다.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