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3

편집부   
입력 : 2017-09-15  | 수정 :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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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맡다

그대에게서 선업의 향기를 맡는다

“그 소문, 들었어요? 부처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신다던데요?”
“아, 당신도 들었군요. 나는 그 이야기 듣자마자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지난밤엔 한숨도 못 잤어요.”
“그러니까 오늘 부처님을 진짜로 뵐 수 있다는 거지요?”

코살라국 수도 쉬라바스티.
한 동네가 흥분에 휩싸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침탁발을 하러 오신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가 들은 부처님에 관한 소문들을 주고받았지요. 부처님은 훌륭하다, 완벽하다, 부처님 가르침을 한 자락만 얻어 들어도 어지럽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더라….
그 때 어떤 사람이 미심쩍어 하면서 말합니다.
“에이,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단번에 알아듣겠어? 치열하게 수행하지 않고서야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일이지.”
“맞어. 그리고 그 높은 분이 어찌 우리처럼 천한 사람들을 상대하시겠어? 우린 그저 부처님이 지나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림자라도 보면 다행이겠지.”
그러자 누군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하더라고. 부처님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하신대. 그리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말을 거신다고 하던걸? 우리 같은 일자무식쟁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더란 말이지.”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꼭 법문을 듣지 않아도 부처님 모습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던걸? 그리고 부처님이 걸어가실 때면 뒤에서 태양이 비치는 것처럼 주변이 환해진다고 하더라구. 그뿐인가? 발우를 들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시는 모습은 마치 연꽃을 한 송이 한 송이 피워내시는 것만 같더라는구먼. 아, 난 부처님 가르침을 듣지 못해도 좋아. 그저 그런 모습을 가까이에서 내 눈으로 직접 뵙기만 해도 좋겠어.”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 남자도 부처님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그분의 모습이 얼마나 고요하면서도 품위가 넘치는지를 들었습니다. 사람들 속에 끼어서 가까이서 뵙고 싶은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차마 그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신분이 너무나도 낮은 자였기 때문이요, 심지어 그의 등에는 똥장군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똥치기 니제.
덥수룩한 머리는 산발인 채 떡이 져 있고, 누더기옷은 해치고 오물이 묻어 있습니다. 굳이 자기의 신분과 하는 일을 밝히지 않아도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습니다. 전생에 악업을 지어서 그렇게 태어났고, 그 악업의 과보로 천하게 살면서 선업 한 번 지을 수 없는 팔자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세상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그는 그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어, 내가 어쩌다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이런 꼴로 지내야 하는가. 부처님이 오시는데 나아가지도 못하니 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그때 사람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부처님이 마을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니제는 까치발을 하고 목을 길게 빼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을 내다봤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부처님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저곳이 환해지는 것 같고, 그리고 그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한 순간,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졌습니다. 부처님의 길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수가!
저 멀리 니제의 정면에 부처님이 서계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멀거니 지켜보는 가운데 부처님은 연꽃 같은 발을 들어서 니제를 향해 다가오셨습니다. 그의 심장이 둥둥 요동쳤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오늘 아침, 오직 니제를 만나기 위해 이 마을로 들어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대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천한 신분인지라 귀족 사람들을 정면으로 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걸레로도 쓰지 못할 천조각으로 몸을 가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똥장군을 짊어지고 다녔으며,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허름한 쪽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앞에 아침햇살처럼 싱그럽고 황금처럼 빛나며 연꽃처럼 향기로운 저 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니제는 생전 처음 마주 대하는 그 모습에 정신을 빼앗겼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전생에 두터운 죄업을 지은 자신이 어찌 저 고결한 분을 마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큰 일 났다. 업장 두터운 죄인이 어찌 부처님을 마주 대한다는 말인가.’
그는 서둘러 옆골목으로 달아났습니다. 성자를 마주 대할 수도 없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몸을 숨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몸을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저 멀리 자기 앞에 부처님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 이런! 어서 도망치자.’
그는 다시 옆골목으로 달아났습니다.

‘어쩌다 내가 전생에 큰 죄를 저질러 이런 팔자를 타고 났단 말인가.’
도망치는 그의 마음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간신히 피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드니 어찌된 일인지 부처님은 여전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황망함에 이리저리 도망 쳤습니다. 자신의 업장으로 성자를 더럽힐 수는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해서라도 부처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중에 그만 어깨에 짊어진 똥장군이 담벼락에 부딪쳐 깨지고 말았습니다. 깨진 똥장군에서 오물이 사방에 튀었고, 니제는 그만 오물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악! 냄새…. 다들 피해!”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코를 쥐고 물러섰습니다. 니제는 어찌해야 할까요? 그는 그만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무리 박복하다기로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전생의 두터운 업장으로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하고, 천하고 가난해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평생 사는 것도 억울한데, 부처님을 뵙는 자리에서 그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말았으니….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을 환영하려고 거리 곳곳에 향을 뿌려두었습니다. 그런 성스런 자리에 니제는 똥오줌을 붓고 만 것입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전생에 지은 죄악업도 그 냄새가 끔찍한데 똥냄새까지 더해지고 말았으니 자신은 어쩌면 이렇게 냄새 고약한 팔자인가 싶어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처님은 어느 결에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서계셨습니다. 니제는 외쳤습니다.
“아, 부처님, 도망치고 싶습니다. 제게 길을 좀 열어주십시오.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숨고 싶습니다. 제발 제가 달아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니제는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외쳤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니제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니제의 탄식이 멎자 부처님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가만히 손가락을 뻗어 그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니제여!”

조용하고도 서늘하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니제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불러준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별명으로 불러댔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이름이 성자의 음성을 타고서 가만가만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코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이름을 불린 니제가 눈물범벅인 채로 부처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부처님은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그대에게 와 있는데, 어디로 달아나려 하오. 그대의 몸이 더럽기 때문이오? 나는 그대 마음에서 풍기는 선업의 향기를 맡았소. 그 향기를 따라 그대를 찾아왔으니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지 마시오.”
니제는 벼락을 맞은 듯 했습니다. 자신에게서 아름다운 향기가 풍겨 나왔다는 부처님의 말씀, 바로 그 향기가 부처님을 자신에게 인도했다는 그 말씀.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저도 수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대장엄경론>의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향기를 맡으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천한 똥치기 니제에게서 오물의 냄새를 맡은 자는 중생이요, 선업의 향기를 맡은 이는 부처입니다.
깨달음이란, 이런 향기를 맡을 줄 아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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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