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2)

편집부   
입력 : 2017-08-31  | 수정 : 20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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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잘 자는 사람이오

어느 날 이른 아침, 한 남자가 씩씩거리며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뭔가 단단히 따질 것이 있는 표정입니다.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고 두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밤을 꼴깍 샜습니다. 자신의 아내 때문입니다. 아내는 부처님에게 아주 깊은 믿음을 지니며 살아가는 여성입니다. 반면 자신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내는 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봉변을 당하거나 무사히 변을 피했거나 그녀의 입에서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자신의 믿음만큼은 양보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남편이 자신이 섬기는 사제들을 집으로 초대한 날, 아내는 정성껏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제들에게 음식을 돌리는 그 자리에서도 아내의 입에서 나직하게 들리는 소리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였습니다. 초대받은 사제들은 몹시 언짢아서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런 날에까지 저렇게 염불하는 것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이 한심한 여자야! 내가 네 스승이란 자의 입을 닥치게 만들겠다.”
홧김에 모진 소리를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오히려 태연스레 이렇게 대꾸합니다.
“부처님을 한 번 뵙기만 해도 내게 염불하지 말란 말은 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일단 부처님께 가보세요. 직접 만나면 분명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 거예요.”
차라리 아내가 화를 벌컥 내며 따지고 든다면 대판 싸움이라도 벌여서 치받는 분노를 풀어내기라도 할 텐데 아내는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남편의 화는 이제 부처님을 향했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화나게 만드는 원인제공자가 분명해지자 그의 분노는 끓어올랐습니다.
‘부처라는 이가 뭐기에 이토록 나를 화나게 하는가.’

밤새 분노에 달아올라 잠자리에 누워서도 뒤척거렸습니다. 어서 잠들어야 하는데 부처라는 이만 생각하면 다시 정신이 말똥말똥해졌습니다. 자신의 잠마저도 앗아 가버린 그자를 생각하니 또다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자가 뭔데 이리도 날 힘들게 하는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울적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꼴깍 밤을 새버린 그는 날이 밝기도 전에 집을 나섰습니다. 부처님을 찾아갔지요. 절이 있는 숲으로 달려가는 그에게는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다’라는 생각뿐이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부처님 앞에 도착했을 때 그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분노로 그는 이런 질문을 불쑥 내민 것입니다.
“무얼 죽여야 편히 잘 수 있습니까? 무얼 죽여야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부처님은 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분노를 죽이면 잘 잘 수 있습니다. 분노를 없애면 슬프지 않습니다.”
마치 그런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나온 대답입니다. 남자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도 화가 나서 날 찾아왔느냐’고 되물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당신 때문’이라고 남자는 대답할 것이고, 그러면 부처님은 ‘그게 왜 나 때문이냐’고 따질 것이고,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부처님에게 지독한 욕설을 퍼붓거나 뭔가 행동을 취해서 분풀이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마치 남의 일이란 듯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 앞에서 남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염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염불이 자신에게 현실적인 피해를 준  적도 없습니다. 그저 ‘하지 말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화가 났을 뿐입니다. 아내는 살림도 잘 하고, 식구들 건사도 잘 합니다. 자신과 다른 신앙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맘에 들지 않을 뿐입니다. 자신의 종교적 지도자 앞에서 습관처럼 나온 아내의 염불은 흘러 들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대체 남편은 무엇이 불만이었을까요? 아내가 자신과 달리 부처님을 믿어서? 그렇다면 부처님을 믿은 것이 남편에게 무슨 피해를 입혔을까요?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자신을 괴롭힙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는 눈 감고 귀 닫고 지내왔으면서, 아내의 염불에 불같이 화를 내다니 밤새 자신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든 원인제공자는 누구이고, 무엇이었을까요?
그걸 부처님은 낱말 하나로 정의해버렸습니다.
“분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분노 때문에 잠들지 못한 것입니다. 설령 어떤 감정에 사무치더라도 잠자리에 들 시간에는 잠을 자야 합니다. 화는 다음 날에 내도 되니까요. 그런데 낮에 품었던 감정을 여전히 안고 있으려니 밤에 할 일, 즉 잠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화를 낼까요? 그건 화가 맛있기 때문입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게 정말 싫다면 우리는 화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맘에 들지 않아서 화를 낸다고 하지만 마음속을 가만 들여다보면 벌컥 화를 내는 것이 본인은 좋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남자에게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분노는 그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에는 꿀이 묻어 있습니다.”
벌컥 화를 내는 그것이 꿀처럼 달콤하기 때문에 그 맛에 취해서, 그 맛을 탐해서 벌컥 벌컥 화를 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다보면 어느 다시 우리는 분노의 뿌리에 도사리고 있는 독을 마시고 맙니다. 분노가 결국 그 당사자를 집어 삼키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분노를 죽이십시오. 성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여깁니다. 분노를 죽이면 슬프지 않습니다.”
남자는 부처님에게서 그 답을 듣는 순간 무릎을 꿇었습니다.(상윳타 니까야)

주변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긴 자더라도 푹 자지 못해서 늘 피곤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서 지친 몸을 이끌고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입니다. 잠 앞에 장사 없다고 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심정은 오죽할까요?

불면증의 원인은 다양하고, 그 처방전 역시 사람마다 증세마다 다르겠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처방전을 쓸 것입니다.
“마음에서 욕심과 성냄을 내려놓으시오.”
그게 내려놓겠다고 해서 쉽게 내려지냐고 따질지도 모르겠지만 달리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낼 시간은 내일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잠을 잘 시간에는 잠을 자는 것이 옳겠습니다.

부처님이 활동하던 곳은 인도에서도 북쪽이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철 한밤중에는 추위가 엄습하지요. 어느 날 이른 아침, 한 사제가 숲속을 거닐다가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인사를 건넸지요.
“부처님, 밤새 편안히 잘 주무셨습니까?”
부처님도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예, 잘 잤습니다. 당신도 편히 주무셨습니까?”
사제는 의아했습니다. 그 추운 겨울밤에 한뎃잠을 자는 수행자가 편히 잘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부처님, 밤에는 차디찬 바람이 불어 닥치고, 땅바닥은 꽁꽁 얼어 있습니다. 얇은 천을 하나 대고 주무신 부처님께서 어찌 편안히 잘 주무실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십니다.
“마음속에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비웠기에 나는 잠을 푹 잡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잠을 잘 자는 사람입니다.”(앙굿따라 니까야)
우리는 부처님처럼 지혜롭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바람도 품을 만합니다. 부처님처럼 잠을 잘 자고 싶다고. 그러려면 마음에 짊어진 욕심과 성냄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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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