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1

밀교신문   
입력 : 2017-08-14  | 수정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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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다

바이샬리는 아주 활기가 넘치는 도시입니다. 큰 무역상들이 오가고, 커다란 장이 서고, 돈과 유흥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곳 명문가 젊은이들이 떼를 지어 스님을 찾았습니다.

라훌라 스님.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아들입니다. 출가하지 않았다면 석가족의 왕이 되었을 인물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친부가 출가한 바람에 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자랐지만,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부처님이 궁에 와서 그를 데리고 절로 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출가자의 삶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반항심도 생겼지요. 부처님은 그런 라훌라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일러주었고, 그는 천천히 출가자로서의 자신을 마주 하게 됐습니다. 그 길을 의젓하게 걸어갔고, 출가수행자의 삶은 어느 사이 그에게 꼭 들어맞는 옷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라훌라 스님에게 대도시 명문가 젊은이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출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유일한 친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왕궁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셨지요. 출가가 왕자의 자리와 맞바꿀 정도로 그리 좋은 것입니까?”
아쉬운 것 없이 살아가면서도 끝없이 무엇인가를 더하고 채워야 하는 세속의 삶에 젊은이들이 조금 지쳤을까요? 어쩌면 저들은 현재의 삶이 속절없다고 느꼈을 겁니다. 지긋지긋하고 번거롭게 느꼈을 겁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다 가야 하나?
이런 세속의 삶이 아닌, 더 의미 있고 진실한 삶은 없을까?

이런 것이 궁금했을 테지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영화롭게 살 수도 있었지만 출가수도자가 된 라훌라 스님을 찾았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누구보다 그 분은 잘 알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불쑥 출가가 그리 좋은 것인지 물었습니다.
과연, 라훌라 스님은 그 명문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꿰뚫었습니다. 화려한 삶의 허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젊은이들에게 출가가 얼마나 뛰어난 삶인지 들려주었습니다.

출가란 말은, 집을 나선다, 집을 떠난다는 뜻입니다. ‘집’이라는 말에는 세속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담겨 있는데, 그런 모든 관계를 끊는다는 것이지요. 부모 자식 관계가 바탕인 가정만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에서 살아가자면 직업을 가져야 하고, 세금도 내야하고, 국방의 의무도 져야 합니다. 이런 의무를 성실하게 해내는 자는 세속에서 안정된 삶과 명망을 얻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이미 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을 단단하게 유지하려고, 아직 갖지 못한 자는 조금이라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생해서 움켜쥔 것들은 무상하기 짝이 없는 것들인데도 말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죽을 때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죽고 난 뒤 다음 생도 똑같을 것입니다. 집을 떠난다는 말은 이런 삶을 자발적으로 벗어난다,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상상도 못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운명 지워졌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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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하지만 출가는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초기 경전에서는 이렇게 출가를 정의합니다. “적거나 큰 재산을 버리고 많거나 적은 온갖 친지들을 버리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나아간다. 그는 출가해서 행동과 말과 생각을 절제하고, 간소한 옷과 음식에 만족하고 기꺼이 멀리 떠나는 삶을 살아간다.”(사문과경)

세속 사람들이 죽어도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것을 훌훌 버린다는 것 자체가 놀랄 만한 일이고, 그런 용기와 결단에 사람들은 존경과 공양을 올립니다. 그래서 출가자에게는 세속의 공양, 공경, 존중, 찬탄이 따릅니다. 세속에서 아무리 신분이 낮았다 해도 일단 출가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존경이 따라오는 것만이 출가의 공덕은 아닙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홀가분한 삶에서 본격적으로 깊은 사색과 참선의 삶을 살아가니, 그 수행의 경지에서 오는 해탈의 즐거움은 말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입니다. 세속에서 추구하는 행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완전무결한 것입니다. 질리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행복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야지만 갖게 되는 것이 아닌, 어느 것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오롯하게 만끽할 수 있는 깨끗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재가와 출가의 삶을 이렇게 비교해서 말합니다.
“재가의 삶은 꽉 막혀 있고 때가 끼어 있는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활짝 열린 허공과도 같다. 잘 닦여서 빛나는 소라고둥과도 같은 청정한 삶이 출가의 삶이다.”(사문과경)

라훌라 스님은 부유층 젊은이들에게 이런 출가의 행복을 들려주었고 어느 사이 그들의 마음속에는 출가를 향한 동경이 일었습니다.
‘아, 스님들은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저리도 커다란 이익과 공덕을 얻으시니 말이야.’
그런데 바로 이때 한 중년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이샬리에서 명망이 꽤 높은 유마거사입니다. 그는 라훌라 스님이 들려주는 출가의 이익과 공덕을 듣다가 불쑥 말했습니다.
“스님, 그런 식으로 출가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가 지저분하고 덧없는 세속의 삶을 부정하고 맑고 깨끗한 출가의 삶을 향한 열망으로 한껏 부풀고 있는데, 그 열망에 보란 듯이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유마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라훌라 스님에게 말합니다.
“출가는 이쪽, 저쪽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세속 세계는 싫고, 해탈의 세계는 좋다는 이분법에 갇히면 그 역시 여전히 출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마거사는,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남의 마음은 잘 지켜주며 고요히 선정을 닦으면서도 온갖 악을 벗어나고 모든 선을 닦는 것이 진정한 출가라고 설명합니다.

유마거사는 이제 젊은이들을 향해 말합니다.
“그대들은 다 같이 출가하기를 바랍니다!”
출가의 삶을 예찬하는 라훌라 스님의 말을 들을 때 젊은이들은 출가를 동경했습니다. 그런데 동경만 하지 말고 지금 출가하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부러워만 할 것인가. 진정 부럽다면 지금 그것을 얻기 위해 행동하라는 것이지요. 더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명문가 부유층 자제들에게 출가는 쉽지 않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집안 재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일일뿐더러,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절대로 그들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고백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훌륭합니다만,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허락도 받지 않고 어찌 저희가 출가할 수 있겠습니까?”
유마거사는 간단하게 해결해줍니다.
“지금 그대들에게 부처님의 경지를 얻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일어났다면, 그리고 부처님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이 출가입니다. 그것이 스님들이 구족계를 받는 것이요, 그것이 스님의 품격을 갖추는 것입니다.”(<유마경> 중에서)

지금도 많은 재가불자들은 출가의 삶을 동경합니다. 먹고 사느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이 삶에 진저리를 치며, 하루라도 빨리 진실한 수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라훌라 스님은 세속의 삶보다 출가의 삶이 더 공덕이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했고, 유마거사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출가의 삶에 공덕과 이익이 있어 그걸 찾겠다고 나선다면 그런 삶은 여전히 집(세속)에 얽매인 삶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부처님 지혜는 이런 분별심마저도 뛰어넘어 있는 경지입니다. 이런 지혜를 얻겠다는 마음을 간절하게 내고(발심), 지금 현재 부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진짜 출가라는 것이 유마거사의 말입니다.

당신은 부처님처럼 되고 싶습니까? 부처님 같은 지혜를 얻겠다는 바람을 품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출가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서 밥벌이를 위해 열심히 산 그 하루, 얼마나 치열한 수행의 시간이었을까요? 출가란 옷 색깔이 바뀌는 것이 아니요, 불자로 살겠다는 마음을 냈다면 이미 우리는 출가의 삶을 시작한 것이라고 유마거사는 말합니다.

이미령/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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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지월)=
BBS FM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으며, 책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과 ‘YTN 지식카페라디오북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붓다 한 말씀’,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등을 썼고, 여러 번역서가 있다. 2007년 행원문화재단 문화상 역경분야 수상, 불교여성개발원의 제3차 여성불자 108인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