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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14

편집부   
입력 : 2017-07-31  | 수정 :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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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기꺼이 받을 때

가사백천겁(假使百千劫), 소작업불무(所作業不無)
인연합우시(因緣合遇時), 과보환자수(果報還自受)
설사 백 천겁이 지난다 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으며
인연이 마주칠 때, 과보는 반드시 받게 되리라.(인과응보경)

업보중생인 우리는 업력의 굴레 속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지은 업의 힘인 업력, 내가 과거와 현재에 지은 좋고 나쁜 업의 힘이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난의 삶을 전개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좋고 행복하고 즐겁고 기쁠 때는 하등 고민할 까닭이 없습니다. 문제는 불행하고 나쁘고 슬프고 힘이 들 때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하여야 불행을 행복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인가?

불교에서는 불행하고 고달픈 일이 닥쳐올 때 ‘내가 지은 바이니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살 것을 가르칩니다. 내가 지은 바를 기꺼이 받겠다고 할 때, 그 업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안에서 샘솟아 불행을 능히 극복하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반대로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싫다, 싫어’하면서 현실의 고난을 피하려 하거나 짜증을 부리게 되면 더 깊은 업의 결박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곧 다가선 업의 과보를 피하려 하고 받지 않으려 하면 더 큰 불행과 고난이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받을 것!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삶에 임하면 미래가 차츰 밝아지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싫어! 저리 가!’라는 자세로 살아가면 미래가 참으로 암담해집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는 거둘 수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거두어들이고 있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내가 뿌려 놓은 씨앗의 결과입니다.

예전에는 커다란 봇짐을 둘러메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양말과 옷가지를 파는 그런 봇짐 장수가 많았습니다. 어느 심인당에 60살이 넘은 노보살님도 이렇게 봇짐행상을 하면서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노보살님은 29살의 유복자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에 취직할 생각도 안 하고 오히려 노모가 벌어오는 돈으로 빈둥거리며 놀기만 할 뿐 미안한 마음조차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큰 아들이 노모를 힘들게 한다고 한마디씩 하였지만, 노모는 아들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장사하느라 불공하는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기에 골목을 다니면서 항송을 하고 자성일에는 새벽에 부처님을 잠시 만날 뿐이지만 굳은 불심으로 힘든 세월을 굳게 이어가고 계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녘에 봇짐을 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들이 노모의 봇짐을 받아들고 하는 말이 “엄마 그만큼 했으면 됐습니다. 오늘부터는 제가 장사하러 나갈 테니 어머니는 집에서 쉬세요.” 하며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노모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두려움에 곧장 심인당으로 달려갔지요. 그리고 부처님께 ‘이것이 무슨 법문인지 가르쳐 주세요.’하는 마음으로 3정진을 하는데 갑자기 앞섶을 다 적셔도 마르지 않는 눈물이 계속 흐르더랍니다. 그렇게 3정진을 끝내고 심인당을 나오니 묶은 체증이 내려가듯 가슴이 후련하고 기분이 넘치도록 환희한 마음이 솟구쳐왔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아들은 골목을 누비며 1년간 봇짐장사를 하더니 시장 한쪽에 노점을 열어서 갖가지 속옷들을 가져와 장사를 하였고 4년 뒤에는 작지만, 점포를 마련하여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더 노력해서 지금은 커다란 빌딩의 건물주가 되어 장사도 더욱 번창하고 노모 봉양도 지극히 하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과거에 지은 것은 받을 각오를 해야 하며 미래의 좋은 인을 짓는 곳에 복된 길이 열린다.”(실행론 4-10-7)

인연은 예약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다가오는 인연들을 지혜롭게 판단하여 잘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연에는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기에 조심스럽고 또한 소중한 것이기에 참회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이행정 전수/보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