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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소리로 듣고 계신가요?

편집부   
입력 : 2017-07-17  | 수정 :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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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 듣기 좋은 소리만 듣고, 듣기 싫은 소리는 애써 부정하며 듣지 않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거리에서도 공공장소에서도 타인이 혹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더 많이 시달리게 되면서 소리에 대한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아졌습니다.

보편화 된 아파트 생활에서 층간 소음은 이제 이웃 간에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고, 집에서도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TV소리, 음악소리, 컴퓨터의 볼륨을 작게 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DMB 등 휴대용 전자 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옆 사람의 이어폰을 통해 새어 나오는 음악소리, 손님을 끌기 위해 볼륨을 한껏 높인 상점의 스피커 소리처럼 듣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귀는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듣느라 피곤하고, 들어야 할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더욱 애를 써야 할 상황도 많이 생겨납니다.
요즘은 혼자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너무 조용하면 오히려 집중이 잘 안되고 공부가 잘 안되어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곳, 카페의 손님들 수다소리가 크지 않고 도란도란 적당한 소음으로 집중이 잘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소음이 있지만,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적당한 소음을 ‘백색소음(White Noise)’이라고 합니다. 다른 소음처럼 방해되지 않는 적당하고 잔잔한 소음으로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 소음을 덮어주어 온전히 잔잔한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해준다고 합니다.

넓은 음폭을 가지고 있어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특징으로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며, 다른 소음을 차단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백색소음은 소리로 소리를 제어하여 긍정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정부시절 소통문제로 모든 국민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었습니다.

소통은 말하는 것부터가 아니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귀를 열고 잘 들을 수 있어야 마음이 열립니다. 두 귀는 왼쪽과 오른쪽 양쪽에 존재합니다. 고루 열려 있어야 잘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들으면 소통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라 해서 상대에게도 무조건 좋은 소리는 아닙니다. 내게 기분 좋은 음악도 타인에게는 듣기 싫은 소음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면 편견이 형성되어지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서 편식습관이 생깁니다. 편견이 좋은 인연 관계를 부정하게 만들고 편식이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듣기 좋은 소리에만 귀를 활짝 열고, 듣기 싫은 소리라 하여 귀를 막아버리면, 좋고 싫음의 차원을 넘어 옳고 그름의 차원까지 무너져 신뢰가 무너지고 소통이 어려워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긍정하는 마음으로 좋아할 준비를 한 채로 마음을 열고 듣습니다. 또 싫어하는 사람의 말은 부정하고 싫어할 준비를 한 채로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로 힘을 내어 용기를 얻기도 해야겠지만 듣기 불편한 말을 통해서도 자신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겠지요.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를 눈처럼 감을 수도 없는 일.

세상의 모든 인연의 소리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 백색소음처럼 긍정적 효과로 나를 찾아보는 내면의 소리로 활용한다면 듣기 싫은 불편한 소리가 불쾌하거나 층간 소음처럼 힘들진 않겠지요?

심정도/명선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