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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 라이더

편집부   
입력 : 2017-07-17  | 수정 :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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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기말고사를 마친 중학생 딸이 읽을 만한 책을 하나 소개해 달라고 해서 책장을 둘러보다가 눈에 꽂힌 책이 있었다. 작가 위티 이히마에라(1944~  )의 장편소설 ‘웨일 라이더(Whale Rider·고래를 타는 사람)’다.

오랜만에 다시 읽고 나니 감회가 새로울 뿐이었다. 10여년 전에 울산 고래축제를 보면서 고래와 관련 된 이야기를 찾다가 발견한 소설이었다. 작가 위티 이히마에라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출신으로 영어로 소설을 쓴 선구자라고 한다. 소설 ‘웨일 라이더’는 2002년에 발표하여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은 2004년이다. 2004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내용은 마오리족의 신화에 근거한다. 마오리족의 시조인 파이키아는 고래를 타고 왔다고 전해진다. 파이키아는 고래와 소통이 가능했으며, 마오리족에 있어서 고래는 자신들의 조상을 데려온 수호신인 것이다. 고래는 파이키아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바다로 돌아갔고, 세월이 흘러 인간들은 점차 고래와 교감하는 능력을 잃어만 갔다.

마오리족의 전설에 의하면 파이키아의 후계자는 남자로, 언젠가는 고래를 타고 다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부족장에게는 딸만 있어서 사람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 남자 아이들 중에 후계자를 물색해 마오리족의 정신, 무예, 전통을 가르치기로 했다. 한편, 부족장의 딸로 태어난 카후는 홀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연마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부족의 수호신인 고래가 떼를 지어 해변가로 몰려와 죽기 시작했다.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이 바닷속 깊은 곳까지 퍼져 고래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것이다. 우두머리 고래는 옛 친구인 파이키아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는 그와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결국 바다를 떠나 집단자살을 꾀한 것이다.

사람들은 해변가로 올라오는 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보았지만, 고래들은 바다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어만 갔다.

그때 여덟 살 소녀인 부족장의 딸 카후는 고래가 죽으면, 인간도 죽고 바다도 죽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되뇌이면서, 죽어가는 고래 등에 올라타고 바다를 죽게 만든 인간의 만용을 용서하고 바다로 되돌아가자고 외친다.

우두머리 고래는 카후가 파이키아라는 것을 알게 되자 거대한 몸뚱이 구석구석으로 행복감이 퍼져나가 희망이 차올랐다. 그리고 서서히 고래들은 바다 쪽으로 몸을 돌려 카후가 이끄는 대로 바다로 향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카후가 먼 바다에서 고래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카후를 자신들의 후계자로 인정을 하는 데에서 막이 내린다.

결국 카후는 고래와의 교감을 통해서 고래도 살리고 바다도 살리고 인간을 살린 것이다.    다시 읽어본 ‘웨일 라이더’는 내게 또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나를 둘러싼 집단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자문을 하게 되었다.

나를 둘러 싼 환경은 언제나 불안하기만 하다. 내일 해체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견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집단을 위한 길이라면 고래등을 타고 바닷속으로 들어갈 죽음을 각오할 용기가 필요할 때다. 모두의 교감을 이끌어 낼 용감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그런 시점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통의 목표를 위해 공통의 체험을 통해 공통의 갈증을 해소해 가며, 힘을 한 곳으로 모일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 속해 있는 집단은 살아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개인의 힘은 제한되어 있지만, 집단의 힘은 무한대일 것이다. 개개인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 서로의 관계는 더욱 견고해 질 것이다. 그래서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어 살아남아야 만 한다.   

과연 중학생 딸은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낄지, 함께 이야기할 날이 기다려질 뿐이다. 

이정희/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