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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편집부   
입력 : 2017-07-03  | 수정 :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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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비가 하도 기운을 차리지 못해 데리고 나왔다오. 집안에만 있으면 더 늘어질 것 같아 바람이라도 쐐야 하겠다 싶어서. 돌이켜보면 꽃비를 처음 만났을 땐 젊었지. 저나 나나 이제 나이가 있으니 움직이는 게 귀찮아. 그래도 어째. 나야 그렇지만 얘가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얘 없으면 나는 못 살아. 자식이야 있지만 날마다 찾아올 여유가 있나.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상인데 내가 이해하고 살아야지.

꽃비가 내 생명의 은인이라오. 오육 년 전인가. 얘 아니면 죽을 뻔했지 뭐야. 며칠간이나 몸에 열이 나고 목이 칼칼해서 감기인가 했지. 그만 일에 병원 가기도 번거로워 꿀물이랑 생강을 다려 마시곤 했는데 차도가 없어. 이삼일 그러다 말겠지 싶어 그냥 잠자리에 들었지. 꽃비랑 항상 같이 자거든. 내 침대 옆에 누워 있다가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 현관 입구를 살피고 오는 거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은이를 누가 이렇게 살뜰히 챙겨주겠어.

그날은 꿈인지 생시인지 가위가 눌리고 가슴이 답답해 죽겠는데 누구를 부르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거야. 힘만 쓰이지.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어. 버둥거리고 있는데 얘가 끙끙대는 소리를 들었는가봐. 침대 위로 올라와 나를 마구 흔들어 대지 뭐야.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고 불덩이 같았어. 근처에 사는 딸네 집에 전화를 걸어야겠는데 전화기까지 팔이 닿아야 말이지. 눈치를 챈 꽃비가 전화기를 물어다 주데. 버튼을 눌렀지. 딸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말이 나오질 않잖아. 내 행동이 수상했던지 얘가 전화기에 대고 마구 짖어대니 딸이 바로 달려왔다오.

폐렴이라 한 달 가까이 병원에 붙들려 있었지. 그때 우리 꽃비가 없었으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퇴원해서 집에 오니 이 녀석이 반가워서 길길이 뛰고 난리였어. 누가 보든 말든 껴안고 울었다니까. 그 후로 내 옆에 더 가까이 붙어서 조금만 낌새가 이상해도 전화기를 물어다 줘. 통화하다가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내 안색부터 살펴. 그 일로 저도 놀랬나 봐. 짐승이라고 함부로 할 건 아니야.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느끼는 건 사람하고 똑같아.

속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요. 제 몸도 못 가누면서 개는 왜 껌딱지처럼 붙이고 다니느냐고 핀잔을 줘. 얘는 자식이나 진배없거든. 사실 자식이라도 이렇게는 못해. 각자 제 가정이 있고 일이 있으니까 늙은이만 쳐다보고 살 수는 없지. 산책 나서려면 챙길 게 많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하고 싶어. 오늘만 해도 지팡이에다 부채, 물 등 준비하는 시간이 한참이지만 바깥바람 쏘이고 나면 얘가 기운이 나거든. 그 재미로 아픈 다리 이끌고 억지로 나왔지. 모기나 파리 달려들까 봐 부채질을 해주는 거야. 손으로 긁을 수 없으니 혹 모기한테 물리면 얼마나 괴롭겠어. 말을 못 하니 더 안타깝지 뭐. 팔이야 아프지만 그게 대순가.

꽃비야 우리 저세상에 갈 때도 같이 가자. 으응. 껌딱지면 어때. 느림보 걸음이라도 걸어야 살지. 가만있으면 몸이 뻣뻣해져서 안 돼. 기운 내. 오늘은 반 바퀴만 돌고 샛길로 내려가자. 다리 아프면 쉬다 갈까.
할머니가 가던 길을 멈추고 의자를 손으로 쓱쓱 문지르더니 엉덩이를 밀어 앉는다. 강아지도 할머니 곁으로 뛰어오른다.

집 앞 산책길에 할머니와 개가 느릿느릿 정지된 그림처럼 발걸음을 옮긴다. 할머니가 개를 뒤따라가며 부채질을 한다. 힘들어 보여 도와 드릴까 여쭈었더니 이야기를 꺼낸다. 자식 자랑이라도 하는 엄마처럼 얼굴이 환해진다. 자식 역할을 톡톡히 하는 꽃비가 기특해 나도 녀석을 쓰다듬는다.

어느 미술관 '가족보고서' 전의 사진 한 장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가족사진 속의 당당한 반려견 모습. 할머니의 가족사진 속에서도 꽃비가 환하게 웃고 있으리라.

백승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