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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 수련이 수행으로…

편집부   
입력 : 2017-06-20  | 수정 : 201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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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교편을 잡은 해, 동시에 죽도를 잡았다. 교직 생활을 시작하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운동을 시작해 보고 싶어 시작한 것이 바로 검도였다. 그 흔치 않은 검도장이 신기하게 학교와 집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인연이구나! 나는 주저 없이 입관 신청서를 작성하였고, 그 인연은 현재도 지속하고 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좋은 자세란 곧 효율적인 동작을 의미하며, 효율적인 동작은 훌륭한 수행 결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폼이 좋으면 숙련된 동작이 가능하고 이는 오랜 시간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숙련자와 비숙련자의 동작에는 여러 차이가 있지만, 운동을 경험하면서 내가 발견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결국, 숙련은 ‘힘을 뺀’ 자연스러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골프든 배드민턴이든 테니스든 간에 숙련자들, 아니 고수들은 힘을 빼는 방법을 안다. 이렇게 힘을 뺀 숙련자들의 동작을 보고 있으면, ‘별거 아니네, 참 쉬운 동작이네’라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와 반대로 비숙련자 즉, 초보들은 동작을 수행하는 데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이는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초보자라도 오랜 시간 연습이나 수련을 통해 점점 힘을 뺄 수 있게 되고 어느 순간 숙련된 동작을 구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운동의 매력이자,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메시지이다. 이를 달리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은 목적과 결과를 위한 노력이 아니다. 우리 삶 속에서 꾸준히 단련하는 과정이며, 궁극이 아닌 삶의 과정이기에 무엇보다 소중하다.

검도장 거울에 비친 나는 아직 힘이 덜 빠졌다. 세련되고 역동적인 동작을 구사하는 척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에게 나의 호흡을 들킨다. 오로지 타격에만 신경 쓰고, 득점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된다. 아직 승부에서 이기기만을 원한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에 미숙하다. 여전히 ‘초짜’ 티를 못 벗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검도 수련을 통해 직장에서의 나, 가정에서 남편으로서의 나, 그리고 초보 아빠로서의 나를 돌이켜 보곤 한다. 신기하게도 나의 검도 수준과 마찬가지로 내 삶의 자세는 아직 힘이 덜 빠진 느낌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성취에 대한 집착과 같은 마음에 경직된 힘이 잘 빠지지 않는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한다는 사실에 무릎을 ‘탁’ 치면서도 돌아서면 그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고단함과 스트레스가 돌이켜보면 온전히 자신으로부터의 문제가 대부분이었음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그 당시에 알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나는 고수의 수준을 경험해보고자 오늘도 호면(護面) 끈을 동여매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본다. 그리고 다시 죽도를 휘두른다. 힘껏 몸을 내던지며 경쾌한 타격을 위해 오늘도 수련을 한다. 아직은 투박하지만,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힘이 빠진, 하지만 누구보다도 부드럽고 강한 타격을 할 수 있는 검사(劍士)가 되어있을 나를 그려보며…. 그리고 힘 빠진 내 마음의 여지에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의 고수가 되어 참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를 그려보며 내 발걸음은 어느덧 심인당(心印堂)을 향하고 있다.

손성훈/진선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