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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9

편집부   
입력 : 2017-05-16  | 수정 :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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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꿈을 이룬다

진기 63년 추기스승강공 후 기로 진원식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한평생 종단에 몸담아 교화하다가 많은 이의 축하를 받으며 퇴임하는 네 분 스승님을 뵈오니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교화 수행하며 퇴임할 수 있음에 큰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깊은 존경심이 우러나왔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생명 있는 것은 태어나면 죽을 것이고, 생명 없는 물건 또한 만들어졌으면 언젠가는 부서지고 없어집니다. 퇴임하는 스승님들을 보면서 예전에 알 수 없던 것들을 새삼 깨닫는 나를 보니 이제 나이가 들긴 들었나봅니다. 그 자리에서 18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겉모습이야 여느 누구와 별반 다르지 않겠으나, 좀 더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모든 것을 포용할 만한 큰 마음그릇을 지니고 싶습니다. 이 또한 바람이지만 그러해져 있기를 꿈꿔봅니다. 꿈꾸는 자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큰 꿈을 꿔야겠습니다.

강공 마지막 날 스승님이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그 물음에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행복하다고 한마디로 답하기에는 삶이 너무나 복잡하고,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알 수 없어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훗날 스승님이 내게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곧바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한 마음으로 환희심 가득 담고 은혜로움을 알며 하루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우리 삶은 현재진행형(~ing)입니다. 끊임없이 추구하고 또 추구하며, 그러면서 끊임없이 비우고 또 비워야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걸 채우면 썩어서 독이 됨을 우리는 얼른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알아차림이 정말 어렵습니다. 많이 노력하고 정진하여 깨닫기보다는 그때그때 알아차려 바꿔나가면 내 삶이 투명한 도화지와 같아서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나의 퇴임식에선 온 가족이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 한 컷 찍을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이는 63년 추기스승강공 때의 소회입니다.

5년 전 기로원에 부임했을 때 그곳의 큰 스승님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고된 수행정진은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염송과 운동, 식사 후 염송 등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고 검소함이 몸에 밴 일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지금은 기로원이 청도로 옮겼으나 그분들의 그늘이 매우 컸음을 요즘 들어 더욱 실감하며 기로의 꿈을 꿔봅니다.

올해 새해 49일 불공 중 기로원에서 제일 연세가 많으신 전수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리를 다쳐 3개월 정도 방안에서 생활하다가 산책하며 하신 말씀이 병문안 가는 차 안에서 문득 떠올랐습니다. “눈을 감아보니 탐심도, 진심도, 치심도 다 버린 것 같았어요. 그래서 눈을 떠보니 탐심쟁이, 진심쟁이, 치심쟁이가 내 안에 다 있더군요. 그렇게 마음 바꿈이 어렵습디다.” 병실에 들어서니 전수님께서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로 반겨주셨습니다. “바쁜데 이렇게 오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100세 시대라 그러는데 몸이 안 좋아 이곳에 있지만, 오늘 하루 보고 싶은 사람을 한 번 더 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요즘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그러면서 전수님은 내게 앞으로 오라고 손짓하더니 스카프를 단정히 매주셨습니다. “전수님, 새해 49일 불공 마치고 다시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니 환히 웃으며 “그래요” 하면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가다듬고 반듯이 누우셨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도 나약하고 정신도 희미해졌으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보이면서 좋고 싫음 없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분, 내가 본 故 정각원 전수님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오늘도 나는 꿈을 꿔봅니다.

10년 뒤 기로 진원식 자리에 홀가분히 설 수 있기를, 내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다 받아들이고 또 모든 책임을 다 내려놓은 뒤 감사함과 행복함만 가득 하기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