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첫 외출

편집부   
입력 : 2017-05-16  | 수정 : 2017-05-16
+ -

잠꾸러기 딸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차를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도로연수를 끝내고 첫 외출하는 날이거든요. 어젠 가슴 졸이더니 아침엔 얼굴이 밝습니다. 잠자는 사이 새가슴이 커진 것인가요. 병아리를 붙일까 말까 망설입니다. “네 수준을 솔직하게 알려야 사람들이 배려해 주지 않겠니.” 아이의 마음을 뒤로하고 병아리를 유리창에 꼭꼭 붙입니다. 급한 볼일만 보고 들어와라. 늦으면 꼭 연락하라는 잔소리도 함께 말입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의 푸대접에 잔소리가 허공으로 달아납니다. 엄마의 등쌀에 무임승차한 병아리도 마뜩잖아 보입니다. 

아이의 표정이 떨떠름합니다. 초보 티내면 봐주는 게 아니라 무시한다며 걱정이 늘어집니다. 그럴 리 없다고 염려를 쫓아냅니다. 자신의 첫 외출을 생각하며 이해해 줄 거라고 다독입니다. 병아리를 한참 쳐다보더니 시동을 겁니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병아리에게 안전을 당부합니다. 

오늘은 시계가 느림보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을 실감합니다.몸은 로봇처럼 형체만 있고 마음은 아이 곁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집안일을 하다 말고 틈만 나면 시계를 봅니다. 오늘따라 전화기도 조용합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는 캔디가 되어 버린 건가요. 불안한 마음을 풀어 놓을 곳이 없습니다. 환하던 낮이 까맣게 타서 밤이 되었는데도 아이는 소식이 없습니다. '병아리를 붙이지 말 걸 그랬나. 일찍 온다고 그래놓고 왜 전화 한 통도 없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자글거리는 마음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자꾸 들락날락하다 하니 문이 지쳐 '삐이익' 소리를 지릅니다. 진득하게 기다리라고 일침을 놓는 것인가요. 이젠 창문에 매달립니다. 까치발을 하고 키를 한껏 키웁니다. 그것도성에 차지 않아 옷을 챙겨 입고 아파트 마당을 서성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드디어 아이의 차가 보입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봅니다. 저도 엄마를 알아보고 깜빡입니다. 어정거리며 주차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차 한 대가 바짝 따라 들어옵니다. ‘어쩌나 시간이 걸릴 텐데. 답답하다고 경적을 울리지 않을까. 어두워서 병아리가 보이기는 할까.’ 줄줄이 이어지는 불안에 몸 둘 바를 몰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뒤차가 후진하더니 멀찍이 떨어져 라이트를 끄고 멈추어 섭니다. 아이의 차가 앞뒤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끙끙댑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립니다. 불 꺼진 뒤차를 보고 꾸벅 인사합니다. 나도 얼결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제야 라이트가 켜지며 깜박깜박 대답을 합니다. '괜찮아요. 잘 했어요. 누구나 시작은 초보예요.' 얼마나 용을 썼는지 아이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종일 동동대며 속 끓인 자신을 돌아봅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습니다. '아이를 믿고 자기 일이나 잘하고 있으면 될 걸. 천방지축 날뛰는 마음에 쓸데없이 놀아나다니. 중심 좀 잡고 살아. 도대체 마음공부는 왜 하는 거니.'

법구경 한 구절을 새기며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심무주식(心無住息)이면 역부지법(亦不知法)하고 미어세사(迷於世事)하여 무유정지(無有正智)이니라. 마음이 편안히 머물지 않고 법다운 법도 모르며 세상일에 함부로 들떠 헤매면 원만한 지혜는 있을 수 없다.

백승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