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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을 팝니다

편집부   
입력 : 2017-03-31  | 수정 :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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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미움’이라는 단어가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동안 잔잔했던 연못에 던져진 돌로 인해 마음에 미미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미운 마음 탓인지 하는 일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글도 쓰기 싫고 주변 사람들만 보면 그냥 말도 하기 싫다. 한마디로 삶의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최근에 별과 달만을 친구로 삼고 여생을 시골에서 홀로 세월을 보내던 어머니가 두 번의 담석 제거 시술로 인해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독감에 걸려 결국 폐렴이라는 원치 않는 불청객을 맞이하는 바람에 부득이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자식 된 도리로 당연히 어머니 건강이 무척 염려되어 일상의 틈새를 헤집고 시간을 내어 먼 길을 거쳐 병원에 도착하여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섰다.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쇠약해진 심신 탓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며칠 동안 매우 수척해진 어머니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울컥하여 약간의 짜증스러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저번에 독감 걸렸을 때 병원에 가 보자고 했을 때 갔으면 입원 안 해도 됐는데” 비록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런 내색 없이 담담하게 상황에 대처하여 부드러운 말투로 힘겨워하시는 어머니의 복잡한 심경을 헤아렸어야 했는데 왜 그랬는지 그날따라 유난히 어머니가 한없이 미웠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런 말을 던진 것은 아마도 아픈 어머니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 겁나게 미워서 어머니에게 못할 말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아는 진리를 깨달음에 있어서 부족함에 어머니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어머니는 퇴원하셨고,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그렇게 어머니도 나도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막내아들이 나를 또 한 번의 시험에 들게 하였다.
막내아들이 몇 달 전부터 눈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대학병원 안과 검진을 위해 바쁜 시간 중에도 버스로 지하철로 몇 달 동안 같이 병원에 다녔다.
마침내 담당 의사로부터 시력이 저하되기 전 눈 수술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길을 걸어가면서 괜히 그동안 진찰받기 위해 힘들게 몇 시간 동안 진찰실 앞에서 기다렸던 생각에 막내아들에게 한숨을 내쉬면서 미움을 표시하고 말았다.

“아빠가 휴대폰 게임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눈 수술을 하게 되었잖니”.
미움과 원망이 담겨 있는 말에 막내아들은 그저 내 눈치만 살폈다.
원치 않는 나쁜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더 잘되기 위한 하나의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의연하게 막내아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하지 못했다.
눈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실에서 나오는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미안한 마음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들아, 수술받는다고 고생했다.”
침상에 누운 아들의 눈가에 수술에 사용한 약물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흘러내렸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천상병 시인은 군사정권 시절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미움을 버리고 생각을 달리하여 하루하루를 소풍 가는 날처럼 살리라는 <귀천>이라는 시를 남겼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심리학자 루이스 B. 스미스는 “분노는 우리가 생존하고 있으며 건강하다는 신호다. 그러나 미움은 병들었으므로 치유를 받아야 한다는 신호다. 건전한 분노는 사태를 개선하도록 활기를 넣어준다. 그러나 미움은 사태를 더욱더 악화시킬 뿐이다.”라고 했다.

유명한 미술가 루오의 판화 중에 매우 재미있는 제목이 적힌 작품이 있다.
제목이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이다.
나무에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도끼날에 독을 묻히지 않고 오히려 향을 묻혀주는 향나무처럼 살기 위해 미움을 팔든지 정히 팔리지 않을 경우에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김용태/심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