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 알기쉬운 교리문답 47

편집부   
입력 : 2017-03-31  | 수정 :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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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의 인연을 짓지 않으려면 무엇을 깨쳐야 하나요?

불교에서는 수행을 많이 하면 생기는 여섯 가지 신통을 얘기합니다. 그 중 하나가 타심통인데요, 흔히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능력인 텔레파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에드거 케이시(Edgar Cayce, 1877~1945)나 유리 겔러(Uri Geller)와 같은 초능력자들을 우리는 마냥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잖아요. 하지만 만약에 이런 능력이 우리에게 생긴다면 과연 좋은 일일까요? 결과적으로 얘기해서 인생이 아주 비참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껏해야 남의 앞날을 예언하는 삼류 점쟁이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의 인생은 어김없이 파탄에 빠지고 말 겁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내뱉는 어떤 악담이라도 그걸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를 갖추지 않으면 몹시 괴로울 거예요. 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의 위선이 여과 없이 그대로 감지된다면 매일매일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울 게 뻔하거든요.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머릿속으로 딴 생각 하는 상대의 본심을 우리가 미리 간파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불행도 그런 불행이 없을 겁니다.

오랜 친구 사이인 두 할머니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서 한 할머니가 말했지요.
“바깥어른은 잘 계쇼?”
“지난주에 죽었다우. 저녁에 먹을 상추를 캐러 나갔다가 갑작스레 쓰러졌지 뭐유.”
“저런, 쯧쯧, 정말 안 됐수. 그래서 어떻게 하셨수?”
“뭐, 별수 있나? 그냥 깻잎 사다 먹었지.”
지난주에 죽은 할아버지보다 못내 먹지 못한 상추에 집착하고 있는 할머니의 엽기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 모멸보다 더 지독한 무관심 속에서 살다 가셨을 할아버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어떤가요? 혹시 상대에 대한 은혜로움과 감사보다는 무관심과 냉대, 원망의 인을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보살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까다로운 시어머니 밥상 차리는데 오만 스트레스를 다 받고 살았답니다. 삶아 놓으면 볶아 와라, 볶아 놓으면 다시 삶아라……. 매사에 이런 식이라, 그 까다로운 입맛 맞추기에 넌덜머리가 난다 싶을 정도로 원망에 원망을 거듭하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던 중에 명절 때가 되어 동서가 와서 하는 말이 “우리 어머니만한 분이 어딨냐, 복 받은 줄 알아라.”하고 얘기하는 걸 듣고는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더랍니다.

밥숟가락은 생을 저어가는 노와 같다고 누군가 그랬어요. 어떤 이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을 따뜻한 밥 한 상 차려서 함께 수저를 나누는 일은 그 자체로 치유적 밥상이 되거든요. 이런 귀한 숟가락을 가지고 남의 뒤통수 때리는 데 써서야 되겠습니까? 무심코 원망의 인연을 짓기 전에 명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내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시는데 어찌 어긋난 행을 할 수 있겠는가. 남을 속이고 욕하고 헐뜯고 불법을 비방하고 탐진치(貪瞋癡)를 앞세워 중생을 괴롭히고 내 이익을 위하고 나를 내세우고 본심을 천대하여 받는 재화(災禍)의 두려움을 모르고 무서운 죄악의 씨를 심는가. 어리석고 불쌍한 중생들은 지금도 늦지 않으니 불심인(佛心印)의 진리가 요료분명(了了分明)하여 신통하고 미묘하게 우리의 심중에 있는 것을 깨쳐야 한다. 깨치기 전에는 일체 구박을 다해 왔지만 깨친 후는 조심조심 한 순간도 잊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그 심인을 공경하고 예참공양하며 항시 환희하고 괴롭지 않게 해야 한다.” (‘실행론’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