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43

편집부   
입력 : 2017-03-16  | 수정 : 2017-03-16
+ -

생활불교의 본령

"일과 경전이 따로 없다. 세상일 잘하면 불법공부도 잘하고 불법공부 잘하면 곧 세상일 잘한다. 부처가 없는 곳이 없으며 일(事)마다 불공이다. 불공하는 사람의 세상일은 불공하는 법(法)이고 불공하는 처소(處所)와 때(時)가 따로 없고 불공하는 사람이 불(佛)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생활불교의 본령이다."('실행론' 제3편 제4장 제6절 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심인당은 마을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동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발걸음을 들이다가 보면 마을 어귀에 위치한 모양새다. 마을에서 바라보면 동북쪽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심인당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서쪽과 남쪽으로 즐비하게 포진을 해서 용트림을 하는 듯한 형상이다. 배산임수니, 좌청룡우백호니 하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좋은 터전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 좋으면 거기 최고지 다른 거시 뭐 있겠어?'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했던 말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시절부터 마르고 닳도록 해왔던 말이다.
“잘 잤능기요? 도회지하고는 달라 공기가 좋아서 잠을 푹 잤을긴데…….”
할아버지였다. 자기는 옆집에 사는 노인이라면서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할아버지가 영수에게 아침인사를 툭 던졌다. 영수는 화들짝 놀랐다. 이 마을에 도착해서 첫날밤을 지내고 막 일어났던 터였다.
“아침은 묵었능기요?”
영수는 잠도 덜 깬 낯빛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랬겠지. 벌써 묵었을 리가 있겠나. 내 그래서 와본기라요. 아침 묵을 준비가 안됐거든 우리 집으로 오소. 내 뒤따라서 퍼뜩 오소.”
영수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릴 때 할아버지는 두말 않고 뒤돌아 서서 걸음도 빠르게 마당을 휙 나서고 있었다.
“어르신 괜찮습니다. 금방 준비하면 됩니다. 아직 생각도 없고…….”

할아버지는 영수가 던지는 말에는 대꾸도 않고 그냥 모퉁이를 돌아 이내 자기 집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담도, 울도 없어서 마당과 길의 경계조차 없는 마을이다 보니 자기 마당에 서서 남의 집 사정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프라이버시가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포시 일어나다가 이내 길바닥으로 내동이 쳐졌다. 생각의 싹이 싹둑 잘리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의 고함소리 때문이었다. ‘퍼뜩 오소 마.’ 조금 전과는 다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마을 전체를 들었다 놓을 것처럼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할아버지가 오라 한다고 금새 좇아가기가 뭣해 머뭇거리며 망설이고 있던 영수는 ‘불 칼’ 같은 말을 좇아 두 말 없이 옆집으로 들어섰다.

“숟가락만 하나 더 얹어 놓으마 되는데……. 어여 먹읍시다.”
“아, 예. 고맙습니다. 어르신.”
“잘 왔심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 좋은 곳이지. 여거마한데가 잘 없을끼라.”
할아버지의 마을자랑이 이어졌다. 영수도 맞장구를 치면서 어쩌다 이 마을로 흘러 들게된 사연을 삭히는 위안으로 삼았다.

이웃집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아침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온 영수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방이며 마당 가장자리 쪽으로 대강 밀쳐두고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휘 둘러보고 나서 집을 나섰다. 이 마을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기 위해 몇 번을 들락거리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 모든 것들이 새록새록 새롭게 다가왔다. 가지기 전과 가졌을 때의 여유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뜻하지도 않았던 애정이 솟구치면서 집착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은 적당히 높거나 낮았다. 먼 산 또한 붓으로 한 획을 긋듯이 높아야 할 곳에서는 높아져 있고, 낮아야 할 곳에서는 낮아져 있어 그야말로 손으로 빚어 놓은 듯 싶었다. 겹겹이 마을을 에둘러 있는 듯한 산을 병풍 삼아 골골이 계곡이 나있고, 계곡 사이에서부터 시작된 평지는 마을로 접어들면서 점점이 넓어져 너른 논밭을 일구어 놓고 있었다. 논과 밭의 경계를 짓는 낮은 구릉 위에는 늘푸른 소나무며 아카시아인 듯한 나무들이 소담스럽게 어깨를 맞대고 서있어 한 여름이면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숭아나무가 없다고 무릉도원이 아니라고 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면서 피씩 웃음을 흘리기까지 했다.

영수는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으로 너무 도취돼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화들짝 놀라 도리질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연고도 없을뿐더러 생각지도 않았던 이 마을로 느닷없이 흘러들어 오게된 사연을 아무에게도 밝힐 수야 없지만, 단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낮 동안 품은 생각은 해가 알고, 밤 동안 꾸었던 꿈은 달이 안다고 하면 억지일까. 영수는 자기가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이 마을의 사람들은 물론 산천초목은 희구한 사연을 짐짓 알지나 않을까 하는데 마음이 닿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양쪽으로 논과 밭이 경계를 지어 구분돼 있는 구릉까지 다다른 영수는 자기 몸통 만한 소나무 곁에 서서 한동안 나무등걸을 어루만졌다. 소나무껍질을 만지면서 영수는 생전 처음 느껴본 듯한 야릇한 감흥에 젖어들었다. 세상물정 몰랐을 어린 시절의 포근함 같기도 하고, 언젠가는 느껴보았던 듯한 기시감 같기도 한 이상야릇한 느낌에 휘둘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코끝으로 전해오는 파리한 향기도 천진난만하게 어울려 놀았던 친구들의 때묻은 냄새 같아 좋았다.

영수는 한낮의 햇살을 피해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딱히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지만 못 갈 곳 또한 없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심인당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수는 주저 없이 심인당 안으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마침 심인당 안에서는 경전을 봉독하고 있었다. 선, 후창으로 봉독하고 있어서 한 경전을 두 번 듣는 기분이라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처음 듣는 말이기는 했지만 내용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장이었다. 그만큼 이해도 쉬웠다.

“불법(佛法)이 세상 가운데 있으면 관세음보살이라 하고, 마음 가운데 있으면 관자재보살이라고 한다.”
마음을 파고드는 말이었다.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을 저렇게도 설명하는구나, 하는 경외감이 들기도 한 순간이었다.
“밀(密)은 색(色)을 이(理)로 하여 일체 세간 현상대로 불(佛)의 법(法)과 일치하게 체득(體得)함이 교리(敎理)이니 체험이 곧 법문이요 사실이 곧 경전이라.”
이어지는 말은 더 쉽게 다가왔다.
가슴이 뻥 뚫린 듯 하더니 어깨 쪽도 한결 가벼워진 듯 했다. 온 몸이 나긋나긋해진 기분이었다. 영수는 그동안 힘들게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누가 뭐라 하든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햇살 한 줌이 입 속으로 쏙 들어왔다.

정유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