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42

편집부   
입력 : 2017-01-26  | 수정 :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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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은 곧 화공

"불공(佛供)이 곧 화공(化供)이다. 올바른 생각 말씨 행위 진실한 마음의 생활이 화공이다. 자신의 미련함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광명을 등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부모와 스승 등을 비방한다. 지혜의 등불을 켜서 미련한 어둠을 몰아내어야 한다. 심인당 불공에는 과일 촛불 향이 필요 없고 본심진언을 외우면서 신행하는 것을 주로 한다."('실행론' 제3편 제4장 제5절)

신(新) 무릉도원

복숭아꽃은 만발해 있고, 온갖 산새들 우짖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며 잠을 깨우는 고을에 소담스런 초당이 즐비했다. 이 고을, 저 고을에서 모여든 선비들 글 읽는 소리가 초당마다 피어오르니 선비촌은 말 그대로 선비들의 이상향이었다.
나라님 입장에서는 이러한 선비촌을 보다 더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했기에 늘 새로 파견할 고을수령을 간택하는 일이 부담이었다. 선비촌에서 공부한 유생들이 나라에서 치르는 각종 과거시험에 줄줄이 입선해 국사를 돕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선비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개인의 학덕은 물론 그에 걸 맞는 인품과 소양을 갖춘 인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파견하곤 했던 일이었기에 선비촌에 입성한 수령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선정을 베풀어 고을에는 그들의 선정을 기리고 찬탄하는 공덕비며 기념식수가 초당만큼이나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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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부임한 선비촌 수령도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과거시험에 급제해 이일저일 가리지 않고 돌아가면서 나랏일을 돌봤다. 그동안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해왔던 선비 중의 선비였다. 인덕이 많다고 칭송이 자자했던 임금은 새로 부임할 수령의 존재를 천거 받은 그 자리에서 두말 않고 그를 선비촌 수령으로 임명했다. 학덕과 인품,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적임자라고 보았던 것이다. 임금의 기대치가 컸기에 새로 부임한 수령은 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소신껏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지만 얼마나 더 잘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선비촌으로 부임한 수령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로만 들었던 고을에 부임해서 직접 둘러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집집이 둘러쳐진 담장은 높기만 했다. 담장을 높이 둘러 누구나 함부로 왕래하는 것을 막고 있는 듯 보였다. 글 읽는데 몰두한 탓도 있겠지만 길거리에는 오가는 이들도 흔하게 볼 수 없었다. 나라의 동량을 생산해내는 고을답게 글 읽는 소리는 넘쳐났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유령의 고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생들이 마음껏 글을 읽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고을을 다스리는 일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겼던 생각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걱정이 앞섰다.
선비촌 수령은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인륜도덕이 몸에 배도록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입신양명에만 눈이 멀어 출세를 한 이후 부모는 물론 동기간에 척을 지고 몰염치 생활을 하는 이들을 더러 보았던 터라 제대로 된 소양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친 것이다. 과거시험에만 집착하다가 이웃도 모르고 사는 옹졸한 마음가짐을 바르게 펴 주려는 생각도 가미된 구상이었다.

수령은 몇날 며칠을 궁리하던 끝에 한 생각을 끄집어냈다. 글공부를 하느라 홀로 지내는 생활이 만연될 수 있다는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공동체활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수령은 옛 전적을 뒤적이고, 전해져 내려오던 전통문화를 골똘하게 고심하다가 두레문화를 기억해내고는 고을 곳곳에 방을 붙여 유생들을 포함해 고을 사람 모두를 모이게 했다. 푸짐한 음식도 준비하고 여럿이 모여서 할 수밖에 없는 일도 마련해 두었다.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길거리마다 붙은 방을 보고 유생들이 모여들자 수령의 머릿속은 금새 하얘지기 시작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세워두었던 당초 계획이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한 사람씩 모여들기는 했으나 서로 데면데면하면서 어울리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삼삼오오 모인다 싶으면 다툼의 소리가 더 높았다. 차려진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유생들은 제 갈 길을 찾아 온다간다 말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서둘러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다는 말은 이 경우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수령은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그 순간을 참아 넘겼다.

고심을 거듭하며 세웠던 계획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되자 선비촌 수령은 또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를 눈여겨보던 이방이 수령을 찾아와 선비촌에서 이십여 리는 더 떨어진 복사골을 한 번 가보자고 권했다. 이방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령은 두말 않고 이방을 재촉해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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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골 사람들은 차림새도 단출했다. 오가는 것도 분주했다. 낮이고, 밤이고 길거리에서 사람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선비촌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혼자서 길을 가는 사람도 없었다. 둘이거나 셋이거나 여럿이서 함께 했다. 손에 손을 맞잡고 오가는 그들의 말소리는 맑고도 고왔으며, 얼굴에는 웃음기가 철철 넘쳐났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두 사람이 힘겹게 끄는 수레가 보이면 옆에서 밀어주고 당겨주곤 했다. 길 가던 나그네가 목이 마를 때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가득 담긴, 뚜껑 덮인 물동이도 집집마다 하나씩 내놓고 있었다. 복사골 수령을 만나기 위해 관아로 가던 길에 마주친 서당 앞에서는 귀를 의심했다. 글 읽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크고 우렁차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놈들, 니놈들은 왜 싸우나?”
“…….”

복사골에서 처음으로 목격된 이상한 광경이었다. 동자 둘이서 다투고 있는 것이 눈에 띈 것이다. 선비촌 수령이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다툼을 벌이던 동자들이 수령 앞으로 불려왔다.
“이놈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어서 말하지 못할까?”
이방이 으름장을 놓았다.
“아뢰기 황송하오나 싸우는 것이 아니오라…….”
“그렇다면 뭐란 말이냐? 네가 말해보거라.”
선비촌 수령은 눈짓으로 다른 동자를 지목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분은 저의 형님이신데 저에게 힘든 일은 시키지 않겠다고 하면서 혼자 어머니 심부름을 모두 다 하려고 하기에 제가 하겠다고 떼를 써서 사단이 난 것이옵니다.”
“어허, 참…….”
선비촌 수령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이 어린 동자들마저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이 저러하니 예서 나고 자란 선비가 참 선비 아니겠느냐. 여기가 새로운 무릉도원일세.”
선비촌 수령은 탄복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