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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1

밀교신문   
입력 : 2016-12-28  | 수정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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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와 정진으로 업장이 소멸된다

결혼한 지 5년차 되는 젊은 보살님이 우리 심인당에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기만 가지면 유산을 하는 통에 본인의 심적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부부관계까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너무 답답하고 억울하여 아는 사람을 통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교사로서, 배운 만큼 매우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전에 불교를 접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논리로는 이 보살님을 교화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날에는 같은 여성으로서 어려움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것만으로 면담을 끝내고, 이튿날부터 염송하는 방법과 의미를 간단하게 가르쳐 주었더니 곧잘 따라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심인당에 나와 염송을 하더니 어느 날 ‘업장’의 의미를 이렇게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불교에는 업장이란 것이 있다면서요? 부모가 지은 업도 자녀가 물려받는다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연좌제도 아닌데.”

보살님에게 심인당을 소개해준 분에게 겪고 있는 고통이 부모님이 지은 업(인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긴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부처님의 인연설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모든 결과는 인과 연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선업이든 악업이든 인연에 의해 받게 된다는 진리를 말씀드렸습니다. 보살님은 종종 부모님에 대한 원망심을 드러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일을 거울삼아 결코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으니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전혀 죄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만큼 큰 죄는 없습니다.

사람이란 크든 작든, 알고 짓든 모르고 짓든 죄를 지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보살님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죄 짓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여 남의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자신의 철학과 다른 사람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였습니다. 죄가 없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남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정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니 남을 쌀쌀하게 대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한 적이 자주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마음이 곧 보살님의 아버님이 지은 인입니다.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이 자신도 모르게 냉정한 성격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 분의 주장처럼 업은 연좌제가 아닌 인과 연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계속되는 유산이나 부부간의 불화 역시 보살님의 성격과 심리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온 것입니다. 먼저 부모님에 대한 원망심부터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원망심은 또 다른 나쁜 인을 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불행을 내치려 하지 말고 내가 지은 인연의 결과라 여기어 감수하라고 했습니다. 이 자세를 가져야만 원망심이 없어지고 참회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좋은 인연은 쌓고 악연을 멀리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정진하라고 권했습니다. 인연이란 언제 오겠다고 예약하고 오는 것이 아니기에 순간순간 다가오는 인연이 좋은 인연인지 악연인지를 판단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능력은 참회와 정진을 통해서만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보살님의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본격적인 참회와 정진의 시작을 알리는 미소였습니다. 참회와 정진은 용서하는 마음, 반성하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과 용맹심을 일으키어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게 하며, 평화로운 마음은 곧 부처님의 마음이요, 아무리 크고 나쁜 업장이라도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수긍한 것입니다. 보살님은 새벽불공과 월초불공을 단 한 번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불공을 하던 중 보살님의 눈에서 펑펑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정진을 마치고 나오는 보살님의 표정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보살님은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예쁜 딸을 순산했습니다. 부부관계도 회복되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업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참회심을 갖게 합니다. 참회심은 선한 인연의 바탕이 되며, 참회와 정진은 모든 악업을 녹여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인과 연이 없는 결과가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참회와 정진하는 용맹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 지어서 과 받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과 부처의 원칙이므로 털끝만치도 어긋남이 없다.” <실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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