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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여기까지 정말 잘 왔습니다.

편집부   
입력 : 2016-12-15  | 수정 :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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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자락, 이맘때가 되면 우동 한 그릇이 왠지 간절하다. 일본에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우동을 먹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일본의 작가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해 마지막 날 밤, ‘북해정’이라는 우동가게를 운영하는 주인부부는 장사를 마치고 가게 문을 닫으려는 순간,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가게로 들어선다. 여인은 “우동 1인분만 주문해도 될까요?”라고 머뭇거리며 멋쩍게 묻는다. 주인 내외가 그 여인의 행색을 훑어보니 누추한 낡은 옷차림에서 바로 어려운 처지임을 짐작하고 주인아주머니는 상냥하게 자리를 안내한다. 주인아저씨는 우동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더 넣고 넉넉하게 우동을 삶아 푸짐하게 우동 한 그릇을 건네준다. 덕분에 여인과 두 아이는 우동 한 그릇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다음 해 12월 31일 밤, 그 여인은 두 아이와 함께 ‘북해정’을 다시 찾아온다. 이  번에도 변함없이 수줍어하며 “우동 1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인아저씨는 넉넉한 양의 우동을 삶아 내어준다. 주인아주머니는 서비스로 우동 두 그릇을 내어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지만, 아저씨는 오히려 가족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할 수 있어서  한 그릇의 우동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따뜻한 배려의 마음도 잊지 않는다. 주인 부부는 우동을 먹으며 나누는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여인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는 딱한 사정을 듣게 된다. 그리고 다행히도 세 사람이 힘을 합쳐 모든 빚을 갚게 되었다는 것이며, 지난해 주인부부가 따듯하게 내어 준 우동 한 그릇이 세 사람 모두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는 얘기도 듣게 된다. 그 후로도 주인 부부는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여인과 두 아이를 기다렸다. 가게 내부 장식과 가구도 새로 바꾸었지만 여인과 두 아이가 앉던 테이블과 의자만큼은 그대로 남겨 놓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몇 해가 지나도 여인과 두 아이는 가게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10여년 세월이 흐른 어느 마지막 날, 드디어 그렇게 기다렸던 세 사람이 가게에 들어서게 된다. 젊은 엄마와 두 아이는 어느덧 중년의 엄마와 청년으로 훌쩍 자라있었고, 세 사람은 “주인 내외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용기를 내 열심히 살 수 있었다.”며 1인분이 아닌 3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다.

올해도 우동 한 그릇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 편이 따뜻해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프고 시려온다. 우리는 늘 입버릇처럼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 되면 다사다난했던 해라고 떠올린다. 그러나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여러 가지로 진실과 사실의 민낯을 오가며, 무엇을 분노해야 되는 지 일상의 리듬이 깨어진 지 오래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불필요한 대상(사물)이나, 권력을 너무 많이 가졌다. 제2의 제3의 최순실은 어디에 어떻게 또다시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으로 살자는 일본의 단샤리(斷捨離)나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열풍들은 어쩌면 과도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각심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기법인 미니멀리즘이, 끊고 버리고 떠난다는 단샤리가 지금의 상황에서 더욱 절실하고 그립다. 삶도 최소한으로 하는 과감한 다이어트가 필요 할 때이다. 단순한 삶을 살기위해 매달 1일에 1개 2일에 2개식으로 날짜 숫자만큼 물질과 마음속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줄여 보는 것도 좋은 게임이 될 것이다.

무기력한 나날들이 일상을 잠식해 버려갈 즈음 시인 이문재의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눈에 띄었다. “분노가 저항으로 이어지고, 저항이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돼야 한다. 저항들이 모여 사회적 담론으로 확대돼야 한다. 분노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집단지성의 불씨가 돼야한다. 분노한 국민이 먼저 꿈꿔야 한다. 저항하는 국민이 먼저 미래를 살아야 한다. 촛불을 켜기 전에 그 다음날을 상상해야 한다. 지금과 다른 미래를 우리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올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과 다른 미래를 우리 스스로 설계” 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해봐야 한다. 이문재의 시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는 오래된 기도와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인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더디가도 사람 생각하며 살자. 올 한해도 무탈하게 여기까지 정말 잘 왔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마무리, 따뜻한 우동 한 그릇 어떠세요.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 교화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