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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旅程)

편집부   
입력 : 2016-12-01  | 수정 : 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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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치료자인 마크 엡스타인(Mark Epstein)은 자신의 책 <붓다의 심리학 – Thoughts Without a Thinker>에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육법계의 세계와 연결하여 다음과 분석하고 있습니다.

첫째, 먼저 미움이나 공포를 지옥으로 분류합니다. 미움과 원망으로 괴로워하고 두려움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지옥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둘째, 성취되지 않은 갈망에 늘 허덕이는 존재들은 바로 아귀와 같은 존재입니다. 탐욕과 갈망에 사로잡힌 아귀와 같은 사람에게는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더라도 그 마음을 모두 만족시켜주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질로만 채우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아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성욕과 식욕 등 본능적인 욕구로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축생과 같은 존재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만 추구하는 생존양식은 바로 축생과 같은 삶이라는 의미입니다. 넷째, 공격적인 에너지가 분출되는 사람은 아수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아수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다섯째, 인간은 거짓자기[虛我]의 갈애사상에 사로잡힌 존재입니다. 즉 인간은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본래의 마음이 가려진 상태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면서 자기도취에 빠져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천상의 세계는 자아경계가 일시적으로 소멸한 상태의 존재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깊은 명상에 빠져있을 때 일시적으로 경험 가능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여섯 가지 상태는 항상 우리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상태입니다. 나는 어떤 존재이며 나의 현실 생활은 어떠한 육법계의 상태에 주로 머무르고 있나요?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 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 공기(空氣) 정화기(淨化器)는 갖고 있지만 영혼(靈魂)은 더 오염(汚染)되었고, / 원자(原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偏見)을 부수지는 못한다. <‘우리시대의 역설’ 중에서> 

‘우리시대의 역설’ 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시의 내용처럼 달에는 갔다 왔지만 우리 이웃은 만나기가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이웃은 고사하고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내 안의 나 자신과의 만남은 더욱 힘들어진 세상이 지금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명상은 나를 만나기가 더욱 어려워진 세상에서 나를 만나는 과정입니다. 밖의 대상을 향하는 마음을 내면으로 돌이켜 자성을 관조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주의력은 끊임없이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밖을 행하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오래되어서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는 능력이 상실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만나는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마음 안에서 무엇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편 의학(medicine)이란 말과 명상(meditation)이란 말은 라틴어의 ‘mederi’에서 연유한 것으로 ‘치료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명상이나 의료는 모두 질병을 치료한다는 공통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상이 의료의 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수행의 방편으로 그리고 치료의 목적으로 여러 가지 명상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명상이든 명상은 자신이 만든 경계의 벽을 허물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 그릇을 넓히는 과정입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내면의 해소되지 않은 문제점들을 해소하는 적극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통한 수행은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육체의 병까지 다스려 나가는 자기 진단적 의료행위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 괴로움의 뿌리가 되는 세 가지 불선근(不善根)인 탐진치(탐욕, 분노, 무지) 삼독을 없애는 것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처럼 행복해지려면 행복해지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연습과 훈련이 수행입니다. 수행을 통하여 이루게 되는 구경의 행복은 육법계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입니다. 자아경계가 완전히 소멸한 상태입니다.

마음으로 만든 이 세상은 환상과 경계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내 세상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고 경계입니다. 내 마음의 세상은 대부분 허구로써 구성되어 있습니다. 변화를, 무상(無常)함을 통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생태 공동체의 세상입니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온 생명을 아우를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를 포함한 타자(他者)와 다른 생명들도 존중하는 세계관과 삶의 태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불교의 우주관이자 세계관입니다. 무경계(無經界)의 영역입니다. 불심인(佛心印)의 세상입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