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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삶

편집부   
입력 : 2016-11-15  | 수정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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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박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럽다. 두 사람의 좋은 인연이  악연으로 끝이 나는 것 같다. 무소유의 실천으로 만난 법정스님과 길상화 보살의 인연을  생각하며 오늘의 글을 연다.. 

법정 스님을 추모한다. 송광사의 조그마한 암자 불일암에서 생활하시다가 강원도 화전민 이 살던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열반에 드셨다. 생전에 “세상 떠들썩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또 사리를 줍는다고 재를 뒤적이는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 내가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내가 즐겨 눕던 작은 대나무 침상에 뉘어 그대로 화장해달라”고 당부하였다. 죽어서 도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을 추모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은 참으로 쉽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힘이 든다. 스님이  가진 것은 넉넉한 마음이다. 돈도 명예도 아닌 ‘무소유의 삶’을 온전히 즐기셨다. 열반에 드신 날까지. 하루 실천하기도 어려운 무소유의 삶을 평생 실천하고도 모자라 열반에 드는 그 순간까지. 생전에 큰스님이란 호칭도 버렸다. 삼배도 받지 않았다. 그 많은 책들을 발간하고  받은 인세로는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희사(喜捨)하셨다. 

법정 스님의 책은 글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들의 모음집이었기에 힘도 있고 설득력이 있다. 스님은 가셨지만 아직도 책들은 나의 서가 한 켠에서 숨을 쉬고 있다.  ‘무소유’ ‘맑고  향기롭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산방한담’ ‘산에는 꽃이 피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합니다’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 ‘서 있는 사람들’ ‘아름다운 마무리’ ‘영혼의 모음’ ‘오두막 편지’ ‘일기일회’ ‘텅 빈 충만’ ‘홀로 사는 즐거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스님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서가에서 또는 머릿속에서 영원히 스님이 살아온 삶의  흔적들은 살아 숨쉴 것이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무저항, 비폭력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이다. 스님도 그렇게 사셨다. 책 몇 권과, 다기 한 세트, 승복 한 벌, 수건 한 장, 버려진 산골 오두막,  텅 빈 의자 하나로. 

김영한 보살은 스님과 무소유의 삶을 나눈 소중한 인연이다. 스님과의 인연으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다. 한 때는 ‘자야’라는 이름으로 시인 백석과 사랑했던 여인이다. 백석은 그녀와의 사랑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란 시로 말하였고 “부귀도 영화도 다 부질 없었어. 모든 게 백석의 열정 담긴 시 한 줄만 못했지.”라고 말했다. 그녀는 백석의 시를 사랑했다. 죽어서는 화장을 해서 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고 하였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을 생각하며 길상화 보살을 추모한다. 스님과의 인연으로  당시 천 억이 넘는 대원각의 시주로 길상사가 탄생한다. 이제는 대원각이라는 이름보다는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김영한이란 이름보다는 ‘길상화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가 ‘나의 모든 재산을 합쳐도 시 한 줄의 가치보다 못하다’라고 평가한 백석의 시 중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며 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를 읽으며 글을 닫는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존고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