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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간 격차

편집부   
입력 : 2016-10-16  | 수정 : 20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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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을 기억하게 만드는 일들 중에는 교육부 관리의 설화(舌禍)가 있었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그의 주장은 “도널드 트럼프조차 얼굴을 붉힐 정도로 거친 발언” “한국 관리, ‘멍멍 꿀꿀’이란 댓글을 이끌어내다.” 등의 제목으로 미국의 신문에도 소개되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한 미국도 그의 표현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라는 그의 부연 설명을 들어보면 그의 인식이 미국사회를 모델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이 투영되는 곳이기도 하고 또 이를 낳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학교가 힘겨워하는 문제들 중 하나가 집단 간 성취격차이다. 흑인, 히스패닉, 미국 인디언, 푸에르토리컨 등 소수인종 집단의 성적이 낮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이 고심해왔다.

가장 먼저 나선 이론이 유전적 요인설로, 단순하게 지능의 차이로 설명한다. 하지만 지능검사 자체가 백인에 유리하게 편향된 문제점이 밝혀지고, 아시아계의 지능이 종종 백인보다 높게 나타나자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이 이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음으로 등장한 이론이 문화결핍설이다. 어릴 때 필요한 문화적 자극이 부족하여 학교에서 따라갈 수가 없다는 설명으로,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유아용 TV교육프로그램 개발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차적 인지활동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에게 문화결핍은 어불성설이며, 단지 백인의 관점에서 결핍일 뿐이라는 반박 논리에 물러나게 되었다.

연이어 대두된 문화차이설은 가정과 동네에서 어릴 때 습득한 언어와 문화가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성적이 낮다고 설명하면서 주류 이론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면 같은 문화차이를 겪는 유태계, 아시아계는 왜 성적이 좋은가?”라는 오그부라는 학자의 반문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의욕에 찬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인 오그부는 같은 인종배경을 가진 미국흑인들의 방관자적 태도를 보면서, 차별적 환경에 대한 태도가 성취 여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자신처럼 자발적으로 소수집단이 된 이민자들은 차별과 역경에도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노예나 정복 등 굴욕의 역사 속에 어쩔 수 없이 소수집단이 된 경우 반백인 집단정서 아래 순응을 거부하여 학교에서 실패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민자녀는 학교에서 잘하면 주변 모두가 칭송하지만 흑인의 경우 동료로부터의 배척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카스트 신분제 같이 고착된 인종 간 신분질서를 낳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집단 간 격차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에서 주류가 된 유럽출신 유태인과 중동지역에서 흡수된 유태인, 남미의 백인혼혈과 원주민, 서독 주도의 통일 후 서독과 동독의 자녀들 등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사례도 언급되었는데, 미국의 한국이민 자녀는 높은 성취를 보이는 반면 재일교포의 경우 상반된 모습을 나타낸다.

집단 간 성취격차를 설명하는 이론에서 다루는 집단은 뚜렷한 민족적 혹은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류, 비주류로 구분이 되는 경우이고, 현실적으로도 성취격차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동질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집단을 구분하고 신분제를 입에 올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그만큼 심각하게 고착화되어 가고 있음이 공공연해졌음을 반영하는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신재영/위덕대 교육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