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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엄마한테 잘해라

편집부   
입력 : 2016-10-04  | 수정 : 201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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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면 파릇한 봄내가 나고 ‘어-’하면 초가을의 저녁노을이 생각난다.

봄은 어 디에서 왔으며, 가을은 어디로 가는가? 초록의 잎들은 흙으로부터 오고, 저녁노을은 서산 너머로 간다. 봄은 겨울에서 왔으며 가을은 겨울로 간다. 겨울은 봄과 가을의 고향이다. 아이는 피고 어른은 진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는 것. 아이와 아버지, 어른과 어머니는 동의어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가끔 본다. 길거리에서, 혹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는 텔레비전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프로가 있다. 이제는 종영이 되었지만 ‘아빠! 어디가?’ 거의 놓치지 않고 본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아빠와 싸각싸각한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늘 아빠는 아이들에게 이방인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가식이 없고 진솔하다. 말보다 먼저 얼굴이 반응을 한다. 좋고 싫은 표정이 경계 없는 선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금방 좋았다가 금방 싫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횟수만큼 아이들도 아빠와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다음 주를 기다리며 ‘아빠! 어디가?’를 묻는 아이들의 진심도 느껴졌다. 프로그램이 아닌 정말 아빠와 좋은 곳에 놀러 가는 놀이로 승화되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보다 아빠들에게 더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어릴 때 내 아이들이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가끔 술을 먹고 물어보면 한결같다. 아빠는 쉬는 날이면 잠만 잔다고. 어떻게 기억하는지, 이틀 동안 먹고, 자고, 자고, 먹고 한 사실만을 또렷하게 기억을 해낸다. 그래도 나는 기억한다. 아이들과 주왕산이며, 지리산이며, 오대산이며 놀러 간 사실을. 아이들이 자란 지금, 옛날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그때를 조근조근 추억한다. 그러면서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잠만 잔 사실은 사진에 없고 너희들과 놀러 간 사실은 사진으로 또렷하게 남아있다고.

나의 이력서에는 아버지의 흔적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다. 아들의 아버지가 된 지금 나의 아버지를 추억한다. 동해안 해안선을 지키던 사진 속의 아버지를, 독도를 지키던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달걀 닮은 괭이갈매기의 알들을, 울릉경찰서의 모습을…

‘아’하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어’하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투정도 부리고 짜증도 내던 어머니가 아이가 되어간다. 어른도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아이는 자라면서 어른이 되지만 엄마는 점점 아이가 되어간다. 아이는 어른의 어머니다. ‘보은 요양원’에서 아이가 되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한다.

‘아들아! 엄마한테 잘해라’이 말을 새기면서 심순덕 시인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엄마는/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김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