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8

편집부   
입력 : 2016-08-18  | 수정 : 20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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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밀작용

"아름다운 식물의 세계를 관찰해보니 정말 만물 중에 가장 고귀하다고 하는 인간들보다 순수하고 거짓이 없다. 상(相)도 없고 탐욕도 없고 그 어떤 대가(代價)도 바라지 않고 무언(無言)의 실천을 되풀이하는 진실한 삼밀작용을 하고 있다. 희생적이고 아름다운 보시와 자비로 꽉 차 있다. 이것이 진실한 삼밀이 아니겠는가?"('실행론' 제3편 제2장 제2절 라)

철따라 피고, 지고…

마음을 다잡았다. 몇 번이고 숨을 고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하며 긴장을 풀었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도 떠올랐다. 이기고, 지고 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몸과 정신을 가다듬은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처는 쉽게 찾아졌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도 쉬 찾을 정도로 큰길에서 머지 않은 곳에 나직이 앉아있었다. 외딴 섬 같은 곳이라, 지나다니는 이가 없어 물어볼 수조차 없는 곳이지만, 굳이 말품을 하지 않아도 그의 거처라는 것이 한 눈에 짐작됐다.
“계십니까?”
“…….”
대문도 없고, 문설주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듯한 방문도 반쯤은 열려 있었지만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사람 살 곳이 되기는 하는가 싶은 마음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쥐새끼 한 마리 푸드득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폐가를 잘못 찾아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련이 남아 집 모퉁이를 한 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발길을 옮겼다. 뒤뜰로 들어서자 어린아이 키 높이는 될 듯 싶을 정도로 자란 풀들이 우거져 오랫동안 버려진 집이라는 느낌이 확실해졌다. 불과 몇 분 전, 생고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리 쉽게 찾았다고 만면에 미소를 지을 때가 부끄러워졌다. 찻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자리를 잡고 있을 리가 없다는 자조를 하면서 집을 나서려는데 지게를 진 채 소를 몰고 다가오는 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

“누구요?”
훈이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발 밑을 내려다보니 두 다리는 그의 집인 듯한 곳, 경계 안에 있었다. 주인 없는 집에 허락을 받지 않고 침범한 영락없는 도둑신세였다.
“저, 죄송합니다만, 누구를 좀 찾아왔습니다.”
훈이는 떨리는 두 다리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가, 조금 전 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 그가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서면서 떨리는 말을 간신히 뱉어냈다. 그는 훈이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외양간인 듯 한 곳에 소를 몰아 넣고는 지고 있던 지게를 내려놓았다.
“선생님, 외람 되지만 소림 선생님은 아니신지…….”
“맞소. 내가 소림이오. 그런데 나는 왜 찾소?”
“그렇습니까. 선생님께 꼭 여쭤볼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부디 내치지 마시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뭔가를 배워가겠다고 왔다면 헛걸음했소. 선걸음에 되돌아가시오.”
“선생님, 그것이 아닙니다. 황 박사님 소개로 왔습니다.”
“그 친구 참, 앉아보시오.”

황 박사 소개로 왔다는 말에 소림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반색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앉아서 말이나 들어보자는 투였다. 훈이는 자칫 다 된 밥에 재 뿌리지 않기 위해 황 박사가 당부했던 바를 되새겼다. 스스로를 도인도 아니요, 식물학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철학자도 아니라고 강조하는 그를 조심스럽게 만나야 한다는 귀띔이 있었다. 훈이가 어렵사리 걸음을 떼어 마루에 걸터앉자 소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거침없는 입담은 가히 들었던 바대로 모자람이 없었다.

“생명이 있는 일체 유정은 대만다라고, 생명 없는 일체 비정은 삼매야만다라며, 일체의 유정과 비정의 말과 소리, 명칭, 성명, 그림문자는 법만다라가 되고, 십계 중에 유정, 비정들과 일체 유형, 무형물의 변천동작은 갈마만다라가 되는 것이오.”

소림은 남이야 알아듣던 말던 한참 주워 섬기더니 얼굴을 훈이 면상 가까이까지 들이밀고는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느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할 위인과는 더 이상의 말을 섞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것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는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선생님께서 하신 말을 일전에 황 박사님께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소림은 그래, 하는 듯한 어깨사위와 얼굴 표정을 하면서 한참 뜸을 들이다가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투로 손바닥을 펴서 훈이 쪽으로 내밀어 보였다.
“삼밀작용이라는 것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시오.”
소림은 좀 전에 했던 말이 육대, 사만, 삼밀 중에서 사만에 대한 해석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가르침인 ‘실행론’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삼밀작용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식물에 빗대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세상 삼라만상들은 모두 삼밀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 생활 가운데 몸과 입과 뜻으로 어긋남이 없이, 복을 짓는 것이 삼밀작용일진대 사람들보다 더 삼밀작용을 잘하는 것이 식물이라는 말이었다. 눈도, 코도, 입도, 손도, 발도 없지만 제각기 자기의 사명을 다해 개성을 발휘하면서 진실한 삼밀행을 하고 있는 셈이라는 설명이었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주변 환경과 여건의 도움을 받아 발아를 하고 땅 밖으로 싹을 밀어내 덥거나 춥거나 아랑곳없이 적응하면서 생장하는 과정이 삼밀작용이요, 간혹 꺾이거나 상처를 입더라도 내색조차 않고 묵묵히 자태를 지키다가 철따라 할 일을 다 마친 뒤에는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는 것 이 모두가 삼밀작용 아닌 바 없다는 가르침을 역설했다. 키가 크거나 작거나, 한철을 살거나 더 오래 살거나, 아름다움을 간직하건 아니건 스스로 하는 삼밀작용은 멈춤이 없고 지극하기까지 하다는 이야기였다.
소림 선생의 말을 듣다가 보니 식물의 삼밀작용과 그의 초옥생활은 뭔가 모르게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훈이 무르팍을 내리치려는 찰나 그와 누추해 보이던 거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홀연히 깨닫고 보니 그 어떤 궁궐보다도 더 장엄하고 훌륭한 비로자나궁전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름이 돋았다. ‘나의 마음이 넓고 크고 둥글고 차면 나의 집도 넓고 크고 둥글고 차다’라고 했다. 식물의 삼밀작용을 닮은 그의 거처는 더 이상 초옥이 아니었다. 분별심으로 가득 찬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소림, 그는 대궐 같은 넓고 큰집에서 둥글고 찬 마음으로 지상의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삼밀작용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식물을 닮은 것처럼…….
삼밀작용에 대한 깨침이 정사의 설법은 계속되고 있었다.

“진실한 삼밀은 누구를 위해서든 몸을 보시하여 복된 행을 행하고[身密] 입으로 바른 말, 착한 말, 복된 말을 하고[口密] 뜻으로 언제나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意密]. 이와 같은 진실한 삼밀행을 할 때 성불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말은 잘 해도 실천을 못하며 남의 허물은 잘 보면서도 자기 허물은 볼 줄 모른다. 그래서 중생은 좋은 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나쁜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