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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 다녀오셨나요?

편집부   
입력 : 2016-08-18  | 수정 : 20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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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로 하루하루가 지쳐가는 듯합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국민안전처에서는 연일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 안내문자를 보내옵니다. ‘오후시간 야외활동 자제하고 물을 자주 마시라’는 국민안전 안내문자입니다. 사람들은 수영장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해외로, 국내외 여기저기로 더위를 피하기 위한 피서(避暑)여행이 한창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무더위와 폭염은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여전히 피서여행에서 돌아오는 우리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안부인사도 더운데 잘 지내고 있는지, 무더위에 몸 잘 챙기고 건강 조심하라는 인사가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폭염(暴炎)이란 참지 못할 정도의 무더위를 말합니다. 글자대로 풀어보면 ‘폭(暴)'은 '일(日)'과 '출(出)' 그리고 '미(米)'가 합해진 회의문자입니다. 날이 활짝 개어 해가 나오자 마당에 동물의 가죽이나 쌀을 퍼내어 말리는 모양의 글자입니다. '염(炎)'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즉 사납게 햇볕을 쬐니 불이 타오른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불볕더위입니다.

한편 선풍기도 없고 에어컨도 없던 시절, 우리 조상님들의 피서법은 어떠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소서(消暑)입니다. 무더운 장소를 피하는 것으로써, 계곡이나 산 등 상대적으로 시원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서(勝暑)입니다. 더위와 싸워 이기는 피서법입니다.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거나 운동 등을 통해 몸속 더운 기운을 땀을 빌어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망서(忘暑)입니다. 무더위를 잊는 피서법입니다. 실행하기 가장 어려운 방법일 수 있습니다. 망서는 무엇에 집중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는데, 더위를 이기거나 줄이기보다 정신적인 노력과 자세로 더위를 잊는다는 의미입니다. 망서에 가장 적합한 정신적 활동으로 우리 선조들은 독서를 꼽았다고 합니다. ‘독서삼매경’입니다. 잡념을 떨쳐버리고 오직 독서에만 골몰하는 경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삼매(三昧)'는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 '삼마디(samadhi)'의 한자 표기입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마음을 한 가지 일에 집중시키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입니다. 선(禪)의 경지와 같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무시무시한 폭염에도 심인당에 앉아 ‘염송삼매’로 용맹정진해 나가는 진언행자들이 있습니다.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노력과 자세는 어쩌면 어떤 다른 수단보다도 더 확실한 피서법이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더위를 피한다는 ‘피서’라기보다는, 또 그것과 싸워 이긴다는 ‘승서’라기 보다는, ‘삼밀삼매’ 이것은 더위를 다스린다는 의미로 ‘치서(治暑)’입니다.

‘삼밀삼매’를 통한 마음공부는 무더위와 폭염을 이겨내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세상살이에는 나를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속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진리입니다. 폭염과 열대야도 지금의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환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픈인연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무더위에 무겁고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하는 느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왜 저렇게 걸핏하면 삐질까? 하는 의문을 어릴 때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질 못했구나! 하는 애틋한 느낌으로 바꾸는 것이 삶의 자비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아주 오래된 상처까지 안아버릴 수 있습니다. 더위에 저항하거나 싸워서 이겨내는 것보다도 더위와 친해져서 친구가 되어 즐겨보는 것은 더없는 지혜로움, ‘치서’입니다. 삶이 힘이 들수록 즐겨버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 사람이 더없는 지혜로운 사람이듯 말입니다.

누군가는 우리의 인생살이가 지구별 사람들의 세상에 여행을 온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보면 신나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힘들고 지칠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누구는 돈이 풍족해서 사치스러운 여행도 있기도 하고, 누구는 무전여행처럼 한끼 한끼 배고픔을 이어가는 여행도 있고, 누구는 하루하루가 고달픔과 외로움의 연속인 여행도 있습니다. 어떠한 여행이든 모든 것을 놀이다 생각하고 즐겁게 즐길 줄 아는 인생여정이어야 합니다. 여행은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가고 싶습니다. 여행 와서 아웅다웅 싸우면 안 됩니다. 누구 때문에 이번 여행을 망쳤다 하지 말고, 나 때문에 즐겁고 아름다운 여행으로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고단함도, 괴로움도, 어렵고 힘듦도,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이 뜨거운 폭염조차도 한판 놀이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몸이 고단해도 마음만은 늘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여행도 기대되고 즐겁습니다. 내 고향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고향길은 더더욱 즐거워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즐거운 인생 여행이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어차피 여행삼아 온 이세상이라면, 무겁게 아웅다웅 살지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살다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내 고향 돌아가는 그 여정은 발걸음이 한결같이 가벼워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더욱 즐겁고 행복한 인생 여정입니다. 

보성 정사/안산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