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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올 때의 마음으로

편집부   
입력 : 2016-08-01  | 수정 : 20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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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다. 단 석 줄, 열다섯 글자의 짧은 시다. 짧지만 긴 울림을 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처럼 며칠 피었다가 지는 꽃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꽃들이 있다. 소월의 영변 약산 진달래, 소쩍새의 울음으로 피어난 미당의 국화,  강진의 명물인 영랑 생가의 모란꽃,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답다는 도종환의 목백일홍, 이름을 불러주어서야 비로소 꽃이 되는 김춘수의 꽃........ 

꽃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올 때는 보았다. 보지 못한 것이 어찌 꽃 뿐이랴. 그 꽃은 어떤 꽃일까? 화려한 꽃도 이름이 잘 알려진 꽃도 아닐 것이다. 길섶에 숨어있는 들꽃이거나 풀꽃일 수도 있다. 이름을 잘 모르는 무명의 꽃일 수도 있다. 자기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그런 꽃이 아닌. 꽃은 그저 무심하게 그렇게 피었는데. 바삐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하고 여유롭게 내려오는 길에 보았다. 보는 것에도 마음의 적용이 있었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산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복의 대상이 되면 목표만 보일 뿐 그 과정은 무시된다. 오르는 과정에서 놓치고 지나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랑한다. ***산에 올랐다고, 해발이 ***미터나 되는 높은 산이라고, 한국에 있는 산이 아닌 외국의 유명한 산이라고. 하지만 산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바라보며 wmf길 것이다. 정상에 가지 못하면 어떠하리. 때묻지 않은 뽀송뽀송한 흙, 한줄기 땀을 식혀주는 솔바람, 바람이 전하는 이름 모를 들풀들의 상큼한 내음,  깊은 골짜기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 합창이라도 하듯 노래 부르는 풀벌레며 새들의 속삭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의 전문이다. 자세히 보면 이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시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할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자주 보고 만나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칭찬할 것보다는 험담할것이 더 많이 보인다. 가까이 있는 사람, 오래 보아야 할 사람을 볼 때는 산에 올라갈 때의 마음이 아닌 산을 내려올 때의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단점도 장점으로 보인다. 단점에는 눈을 감고 장점에는 눈을 뜨는 마음의 작용이 생긴다. 이런 마음이 심인(心印)이고 이런 눈이 혜안(慧眼)이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애기애타(愛己愛他)’라는 말을 자주 쓰거나 인용하곤 했다. 작게는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크게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큰사랑을 의미한다. 불교에서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이다. 이 말은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자리(自利)와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利他)를 합한 말로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과거에 내가 만났고, 지금 만나고, 앞으로 만날, 모든 인연들은 사랑의 대상이다. 사소한 돌 하나, 풀 한 포기, 한 모금의 공기도.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라도, 이미 태어난 것이든 이제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든, 일체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사랑이고 자비심(慈悲心)이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지만 내려올 때 본 그 꽃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겠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보은(報恩)의 마음으로.  

김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