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7

편집부   
입력 : 2016-07-01  | 수정 :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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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보시공덕

"보시에는 유상(有相)과 무상(無相)이 있다. 유상은 인간의 도움을 받고 범위가 좁다. 무상은 부처님의 도움과 우주의 도움과 하늘의 도움과 땅의 도움과 허공의 도움과 물의 도움과 불의 도움과 인간의 도움과 식물의 도움과 동물의 도움과 나라의 도움과 외국의 도움과 내세의 도움까지 받아 범위가 무량하다."('실행론' 제2편 제10장 제2절 가)

“부처님이 도우셨네”

"오늘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야할 것입니다. 가보시면 알겠지만 할 일이 제법 많을 것입니다. 불공도 좋지만 이웃의 일을 도와 주는 것도 불공 못지 않게 좋다는 것을 잘 아시죠? 보살님들……."
"그럼요. 그래서 오늘은 옷도 작업복처럼 입고 왔는걸요……."
깨침이 정사가 운전석에 오르자 좌석을 가득 채워 앉은 이들이 한 마디씩 주고받곤 하면서 왁자지껄했다. 고무장갑을 낀 채 손을 흔들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밀대 걸레를 비롯해 차안에는 각종 청소도구들도 실려 있어서 마치 청소용역차량을 방불케 했다.
“뭔 준비를 이렇게 많이 했습니까? 보살님들……."
“오늘 할 일이 많을텐데요……."
“가보면 알겠지요.”

깨침이 정사는 짐짓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대형 유통마트에 물품을 공급하는 큰 물류회사 사장인 신교도가 물류창고 옆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는 말을 들은 것은 지난 자성일이었다. 이전 날짜가 월요일이었던지라 수요일 불사를 마치고 불사에 동참한 이들과 함께 찾아가 보기로 했던 것이다. 이전불사를 하기로 한 것이 목적이었지만 미처 정리를 하지 못한 것이 있을 때는 정리를 해주고, 청소도 도울 요량이었다.

도심에서 벗어나 국도로 한참을 달리자 물류창고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의 한 폭 그림 같았다. 물류창고가 보이는 곳에서 이내 국도를 벗어나 지방도로로 접어든 후 10여 분을 달리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물류창고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세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넓은 대지에 커다란 창고도 그렇지만, 새로 단장한 터라 먼발치에서도 금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말끔하게 단장돼 있어 자체발광이라도 하는 듯 했다. 물류창고에 다다라서 보니 사무실은 창고 옆 한 쪽에 나직이 자리하고 있었다.

“보살님들 복장이……."
깨침이 정사 일행이 탄 차가 막 도착했을 때 사장은 마침 사무실 앞에 서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밀대 걸레를 어깨에 들쳐 맨 채 차에서 내리고 있는 일행들을 보고는 눈을 치떴다.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어서 사무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사무실은 아주 말끔하게 정리가 잘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은 청정한 곳인 듯 했다. 사무실을 지나쳐 안내를 받아 들어간, 회의실인 듯한 넓은 공간도 손댈 곳 하나 없을 정도로 안정감을 주었다. 유리로 된 창을 통해서는 사방이 한 눈에 내다보여 마치 자연 속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도록 꾸며져 있었다.

“이렇게 깨끗하면 안 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보살님들 할 일을 남겨 놓았어야 하는 건데 제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평소에도 스스럼없이 농담을 잘했던 사장은 되레 미안하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정사님 정말로 희한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직원들끼리만 정리를 했으면 아직 절반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침 어제 오후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모든 정리를 말끔하게 해주고 갔습니다.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사회봉사단이라고 쓰인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아마 서른 명은 됐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느닷없이 찾아와서는 정신 없이 일을 해대는 바람에, 댓바람에 정리를 다 할 수 있었습니다. 하도 고마워서 사례를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고 물어봤더니만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면서 일을 끝마치고는 순식간에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따라 나가서 어디에서 나온 분들이냐고 물어보아도 알려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고맙고,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을 복을 그 사람들이 먼저 지었구먼요.”
“그러게 말이에요.”
“법계에서 도왔습니다. 평소 각자님이 워낙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시니까 유연, 무연으로 그렇게 도와주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정사님.”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선배 정사님 한 분이 교화를 나가기 전에 처무생활을 하면서 토요일이고, 휴일도 없이 몸을 쉬지 않고 사무실 일이면 일대로, 청소면 청소대로 온갖 일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 찾아서 잘 했다고 합니다. 그 정사님이 교화발령을 받아서 심인당으로 부임하니 그 심인당의 보살님과 각자님들이 온갖 일을 도맡아 해줘서 아주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각자님도 아마 오래 전부터 그렇게 지어온 인연이 있어서 이번에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듯 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깨침이 정사는 직원들도 동참하게 하고 그 자리에서 사무실 이전불사를 가진 뒤 ‘실행론’에 있는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일을 하고 있는 사무실 직원들이 잘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님께서 무상보시는 그 공덕이 무량하다고 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심지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중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인연을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상보시는 아는 사람의 도움만 받는 반면 무상보시는 아는 사람의 도움, 모르는 사람의 도움, 하늘의 도움, 땅의 도움, 물의 도움, 불의 도움 등 어디서든지 부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말씀이지요. 무상으로 하는 것은 그 누구도 못 빼앗아 가지만, 유상으로 하는 것은 도둑도 맞을 수 있고 빼앗기기도 하며 파괴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형상 없는 무상진리는 바르고 눈에 안 보이는 것이며 크게 제도되어서 마침내 해탈하고 성불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깨침이 정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여기 계시는 직원 분들은 다 봤겠습니다만 어제 사회봉사단이라고 쓰인 어깨띠를 두른 분들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도와주고 간 것은 사장님이 평소에 쌓아온 지중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래서 인연을 잘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도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부모를 인연했기 때문에 각자의 개인이 있고, 나라를 인연했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으며, 이 회사를 인연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이곳에 있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열심히 살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보다 나은 인연 짓기에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회사가 잘돼야 여러분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보람도 찾을 수 있는 이치도 똑 같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난 인연 역시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