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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氣)와 운(運), 그리고 사주팔자

편집부   
입력 : 2016-07-01  | 수정 :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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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단할수록 사람들은 외부의 다른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심해집니다. 자신의 미래가 더욱 불안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지 방향성을 잃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는 자신의 인생살이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회가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이나 앞으로의 인생살이가 더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주팔자(四柱八字)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무언가 희망적인 해답을 얻고자 찾아가는 점(占)집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근심거리만 안고 돌아오기가 일쑤입니다.

팔자를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전생 성적표’ 혹은 ‘전생 업보’이고, 기독교식으로 해석하면 ‘주님의 섭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팔자는 바꿀 수 없는 것일까요? 인과관계를 따졌을 때 ‘내가 지은 대로 내가 받는다,’ ‘지은 것은 틀림이 없어 내가 피할 수가 없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폐쇄적 인과관계’로써 숙명론 내지 운명론이 되고 맙니다. 불교의 인과관계는 그에 비하면 ‘개방적 인과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因)과(果) 사이에는 연(緣) 이라는 것이 개입이 가능합니다. 연의 의미는 원인을 도와 결과가 생기게 하는 조건으로서의 간접적 원인입니다. 예를 들면 벼에 대(對)하여 씨는 인이요, 물·흙·온도 같은 것은 연이 되는 것입니다.

『조용헌의 담화』라는 책에는 팔자를 바꾸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적선(積善)입니다. 적선을 많이 해야 팔자를 바꾸고 집안이 잘 된다는 명제입니다. 당장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후손을 통해서 반드시 나타납니다. 선행을 쌓으면 반드시 집안에 경사가 찾아온다는 뜻의 주역(周易)에 나오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구절이 생각납니다. 두 번째가 눈 밝은 스승[명사(明師)]을 만나야 합니다. 인생의 중요 고비마다 가르침을 받아야 길이 열리듯이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도 염원(念願)이 깃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명상입니다. 하루에 100분 정도는 매일 빼놓지 않고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명상과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안색과 눈빛부터가 다르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독서입니다. 책을 읽으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생기기 때문이라 합니다.

한편, 사주팔자는 운(運)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運)이라는 것은 ‘돌리다, 회전하다’의 뜻으로 유전(流轉)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쉼 없는 변천(變遷)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운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운(運)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氣)와 운(運)으로 살아가고 살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맹자(孟子)는 기(氣)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氣)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의(義)와 도(道)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기운(氣運)은 ‘바야흐로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분위기(雰圍氣)’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이 기(機)와 운(運)으로 살아가고 살려지는 것이라면 운(運)이라는 것은 회전과 유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주팔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타고난 ‘전생의 업보’이며 ‘전생 성적표’입니다. 우리가 이 생(生)을 살아가면서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기(機)는 어떠합니까? 만물을 생성 소멸시키는 물질적 시원으로써 생명의 원천이 되는 힘, 에너지입니다. 나 스스로 어떠한 기(氣)를 가지고 있느냐가 어떠한 운(運)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그리고 운(運)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기(氣)는 나 스스로가 어찌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어떠한 삶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의 운(運)보다는 나의 기(氣)가 결정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적선(積善)과 더불어 나의 팔자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하루 100분 이상의 꾸준한 명상입니다. 명상은 생명의 기(氣), 즉 내 생명의 에너지를 변화시킵니다. 나의 기운(氣運)을 바꾸고, 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불교의 명상수련이 정신치유에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다는 임상실험의 결과들이 시사(示唆) 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진언행자는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 명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육자진언을 외우고 실천하면 나쁜 사주팔자가 물러난다.”(실행론: 1-4-1) “성품의 그림자인 팔자는 바로 육자진언과 육행으로 고칠 수 있다.”(실행론: 2-4-4) 실행론의 가르침도 육자진언 실천으로 팔자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일갈(一喝)하고 있습니다.

한 유명 명리학자와의 일화(逸話)가 있었습니다.
“내가 많은 사람의 운명을 정확히 짚어내지만 맞추기가 힘든 사람들이 있어요.” “누구입니까?” “스님들은 힘들어요.” “왜 그렇지요?” “스님들은 사주팔자가 안 맞아요. 그래서 제 친구 하나도 워낙 타고난 팔자가 기구(崎嶇)해서 스님으로 만들었는데, 그 친구 지금 스님 돼서 잘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고행으로 수행의 삶을 사는 사람은 타고난 팔자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꿔내는 힘이 생깁니다.”

보성 정사/안산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