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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간의 모든 일이

편집부   
입력 : 2016-07-01  | 수정 :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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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놓인 가족 공용의 구닥다리 컴퓨터가 그날따라 더욱 버벅거렸다. 이럴 때 사용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운 좋게도 바탕화면에 깔린 거대 폴더가 원인임을 알아냈다. 파일명이 ‘미드’, 곧 미국드라마이니 분명 둘째 딸내미 ‘소행’이다. 폴더를 옮겨 조치를 하고는 한 마디 던졌다.

그런데 “앞으로는 절대 안 할게요.”라는 응답이 방에서 돌아왔다. 감정이 실린 말투였다. 그럴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잠시나마 고스란히 받은 스트레스가 내 말투에 담겼을 것이고, 다른 가족들이 듣는 데서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말버릇이… 훈계를 할까 하다가 커피를 타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감정이 수그러지자 호기심이 솟았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데 왜 감정 실린 말들이 오가게 되었는가?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포스트잇이 제격일 테고, 그것을 모니터 하단에 붙여 놓았다면? 나라면 감동을 받을 것 같았다. 전달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생각이 미치자 깨침의 기쁨과 함께 더 이상 붙들고 씨름할 그 무엇도 사라져 버렸다. 진정으로 해소가 된 것이다.  

이론들을 두루 찾아보니 나의 경험담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미디어학의 창시자 마샬 맥루한의 말로 설명될 수 있었다. 전달 매체가 메시지의 성격을 결정하며, 매체가 변하고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사실 오가며 마주쳤던 맥루한의 그 명제가 아리송했었는데 마침 그때 안 하던 방식으로 처신한 덕분에 생활 속에서 이를 체득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나는 두 갈래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는 손쉬운 쪽이 먼저다. 문제란 해결되어야 할 무엇이고, 반복적인 규정하기를 통해 성격을 확인하고 해결책이 모색된다. 생각은 좁게, 더 좁게 수렴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방향이 잘못될 소지가 크다. 문제라고 규정하는 사람은 주로 ‘갑’이고, ‘갑’이 될수록 스스로의 틀 속에 갇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간의 일이란 대부분 내가 봉착했던 상황처럼 해결이 아니라 해소되어야 할 성격의 일이다.

다른 선택은 상황을 ‘현상’으로 인식하는 쪽이다. 현상은 ‘그냥 있는 일’로서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이해를 위해서는 생각을 더 넓게 펼쳐야 한다. 자신의 틀을 넘어서 모색하게 되고 결국 배움에 이르게 된다. 이 세간의 일이 비로소 활동하는 설법이 되는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알고 나면 더하고 빼는 수고로움도 사라지게 된다. 포스트잇처럼 감동을 낳는 해법은 해결이 아니라 해소의 과정에서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때 상황을 언급했는데 다들 씩 웃고 넘어갈 정도로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아마 당시 문제로 인식하고 처신했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지 않을까. 다만 아내의 한 마디가 이세간의 일상사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밖의 어려움을 들어주면 되는데 잘잘못을 따져버리니 말하기 꺼려진다는 것이었다.

신재영/위덕대 교육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