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 알기쉬운 교리문답

편집부   
입력 : 2016-07-01  | 수정 :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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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면 좋을까요?

밀교(密敎)의 교주인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대일여래라고 하지요. ‘대일(大日)’은 삼라만상을 두루 비추는 큰 태양이라는 뜻이에요. 태양이 없다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태양이 있다 하더라도 만약 지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행성이 당장이라도 달라붙을 듯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화탕지옥이 따로 없겠지요. 또 반대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한빙지옥이 되어버릴 겁니다. 

고슴도치가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을 통해 인간관계를 설명한 우화가 있습니다. 한 쌍의 고슴도치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예리한 바늘에 찔려 깊은 상처를 입게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멀리 떨어져 지내면 추위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아픈 줄 알면서도 서로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붙었다 떨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마침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이상적인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혼자 있으면 외롭고 그래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불편해지는 게 중생에게 주어진 삶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니 나와 인연된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치 장작불 다루듯 해야 해요.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 잘못하면 큰 화상을 입게 되지요. 반대로 또 너무 멀리하면 장작불의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될뿐더러 쌀쌀한 추위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마는 거예요.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 간 관계가 그렇잖아요. 나와 잘 맞고 친근하던 사람도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 지겨운 느낌과 구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 반대로 평소에 미워하고 꺼리던 사람도 이유 없이 발길이 뜸해지면 괜히 소식이 궁금해지는 법이거든요. 그러니 좋고 싫은 감정을 추스르며 당장의 호불호(好不好)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와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인간관계에 있어 중도(中道)를 지키는 지혜로운 방편이기도 한 거예요.

최근 들어 20대 여성들은 회식이나 단체행사에 잘 빠지고 경조사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황금 같은 주말을 남의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반납하는 게 탐탁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경조사를 돌아보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특히나 그렇지요. 행여 결혼식은 못 가더라도 장례식은 반드시 가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소한 것이 쌓여서 형성되는 법이거든요.

인간관계의 거리 조절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뿌리 깊고 시야가 넓은 가문의 우리 조상들은 멀어져 있는 것은 일부러 가까이하고 가까이 있는 것은 일부러 멀리하는 법을 세우면 이익이 됨을 알았다. 정다운 사이에는 자주 오고 가며 가까이하지 않는 법이 서 있었으며 금전을 주고받지 않는 법이 서 있었으며, 이익을 위해 서로 동업하지 않는 법이 서 있었으며 곤란해도 서로 의뢰하지 않는 법이 서 있었다. 그러나 길흉사와 같은 큰일과 좋은 명절에는 남다르게 오고 가며 가까이하여 도움을 주고받는 정이 끊어지지 않고 더욱 깊어졌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이 법을 세우지 않으면 현실로든 진리로든 머지않아 결국 쇠퇴해지고 멸망되었다. 이러한 법칙을 멀리 조상으로부터 경험하여 알고 왔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풍속이 되었다.” (‘실행론’ 4-3-2(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