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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있는 안경은

편집부   
입력 : 2016-06-16  | 수정 : 201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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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눈은 많은 것을, 내 앞에 펼쳐진 일상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다양하게 봅니다. 

여름철 강한 햇볕이 내리쬐면서 눈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요즘은 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시력을 보호하고 유지하면서 잘 보기 위한 의학적 기능적인 면 외에도 안경을 멋으로 혹은 얼굴의 결점을 가리거나 패션아이템으로도 착용을 많이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먼 거리의 물체를 보는 데는 잘 보이는데 가까운 거리의 작은 글씨를 보려고 하면 눈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점점 더 멀리 거리조절이 되어야 제대로 보이는 눈의 시력에 이상 징후가 생겼습니다.

문득 어릴 때 안경을 쓰고 싶어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마음에 안경을 쓰면 왠지 예뻐 보이는 듯하고 뭔가 더 지적으로 보이는 듯해서 시력이 나쁘지 않음에도 도수가 없는, 안경알이 없는 안경을 써보았던….
안경은 원래 사물을 좀 더 잘 볼 수 있게 눈의 역할을 도와주는 도구로, 일반적으로 시력을 교정하거나 외부자극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을 합니다. 자외선 안경이나 3D 같은 특수 안경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 등을 경험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았다고 해서 그 사물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식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물인 것이 물고기들은 자기가 사는 집처럼 보이고, 천상 사람들에게는 유리로 보이고, 아귀는 불로 보이는 것처럼 똑같은 환경도 각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水) 한 가지를 두고도 각자가 처한 입장이나 업연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른 견해로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존재가 바라보는 수 만큼의 다른 세계처럼 비추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안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커서 눈으로 잘 볼 수 없는 것, 아주 작고 미세해서 잘 안 보이는 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현미경을 통해 보면 신비롭고 새로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작은 세상 속의 새로운 큰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안경은 또 하나의 ‘눈’입니다.

그렇다면 눈을 더 많이 가진다고 언제나 더 좋고 더 유익하고 바르게 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자세히 본다는 것이 항상 더 좋고 유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안경은 사물을 잘 볼 수 있게도 하지만 너무 많이 의존해서 그로 인해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게도 하고 더 욕심을 지니게도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눈에 맞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맑고 투명한 안경, 푸른색 안경, 붉은 안경, 검은 안경 등 자신이 만들어 쓰고 있는 자기 자신만의 안경으로 밖을 향해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만들어 쓰고 있으면서도 쓰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대를 향하고 밖을 향한 색안경.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늘 현명하다고 정확하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본다거나 상대를 보는 것은 자신의 업에 따라 인식하고 인지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를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씌워진 안경과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을 통해 내가 가진 기준과 정해놓은 틀과 의식의 작용으로 원래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나 한계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인정하지도 바꾸지도 못합니다. 내가 어떤 색안경을 쓰고 있는지를 알면, 알아차린다면 쉽고 편하게 안경을 벗을 수 있습니다.  

눈의 시력에 이상 징후가 생겨 나빠지면 우리는 안경을 씁니다. 그러나 자신의 눈에 맞는 안경이 아니면 시력이 저하되거나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이때 자신에게 맞는 안경으로 바꾸지 않으면 잘 안 보이고 바르게 본다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바르게 볼 수 없으면 허상과 실상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며 내 삶은 힘들어집니다. 바르게 볼 수 없으면 내 의식과 생각과 사상은 변하지 않고 내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때는 바꾸어야 합니다.

내면에 잠재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고정관념에 내가 가진 틀을 벗지 못한 채 소중한 것을 잃고 본질을 놓쳐 외형의 껍데기를 보고 갈 수도 있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자기가 보는 것만 주장하게 되면 상대와 세상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어려워집니다. 스스로가 만들어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야 할 때임을 알아차려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보고자 한다면 자신을 그대로 비추어 자기의 허물을 낮과 같이 밝게 볼 수 있는 본성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눈은 자신의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거울을 통해야 자신의 눈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허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진리의 눈을 통하여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명선심인당 교화스승 심정도 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