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5

편집부   
입력 : 2016-05-02  | 수정 :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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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해심인

"원망심을 여의는 순간 삼계유정(三界有情)이 다 내 몸이고, 간탐심을 여의면 이 세상 티끌 하나 내 것 아닌 것이 없다. 마음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다가올 모든 앞일이 꼬여서 복잡하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펴 있으면 다가올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간다. 자기 마음 가운데 팔만사천경을 배우는 길이 있다."('실행론' 제2편 제9장 제4절 나)

담장 허물기

[전국종합]“산업체들이 같은 업종간 담장 허물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산업체들은 그동안 보안상의 문제와 고객확보를 이유로 같은 업종간에는 특히 넘볼 수 없는 장벽을 굳건하고도 높게 쌓아만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같은 업종간 일부 장벽을 허물면서 경쟁업체들의 고객에게도 은근슬쩍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는 등 담장 허물기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경쟁업체의 고객들에게 맛보기 또는 완벽한 서비스를 가림 없이 제공함으로써 자사의 이미지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고객을 확보하려는 전략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구형 마케팅을 탈피하고 저인망식 오픈형 마케팅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고도의 전술이 산업체에 불기 시작한 것이다.”
광순씨는 아침 신문을 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기사를 읽고 또 읽어보았다. 침침한 눈으로 잘못 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아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이 변한 것일까?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기사화 되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기사화 되고, 경제면 톱까지 장식했겠지만…….

광순씨는 들고 있던 신문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어릴 때의 일이 생각났다.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이라도 자기 것은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다 쓴 공책마저도 버리지를 못해 책꽂이에 가지런해 꽂아두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 오른 것이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닐 때마다 연습장으로 썼던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내다버리지 못하게 어머니에게 신신 당부까지 하면서 끌어안고 다녔던 추억도 뒤따라 나왔다.
어릴 때 무엇이든지 버리지 못했던 습관은 나이 들어서도 매 한가지였다. ‘방하착’이라는 말을 알기 전까지는……. 왜 그토록 버리지를 못하고 집착했던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민망한 마음만 들었다.

광순씨가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장만한 것은 조기퇴직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하면서부터였다. 대학교를 근근히 졸업하고 타향살이를 전전하면서 ‘배운 것이 까짓 것’이라고 전공을 살려 한 가지 일만 줄기차게 했다.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해서 식솔들을 거느리며 먹여 살리고 가정을 지탱하느라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 꿈속에서나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아등바등 살기 바쁜 가운데서도 세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빠르게 흘러 비교적 이른 나이에 회사에서 떠밀리다시피 조기퇴직을 하고 나자 마땅하게 마음 하나 둘 곳이 없었다. 이일저일 다 접고 고향으로 가자고 가족들을 설득했으나 오히려 광순씨가 설득 당할 위기에 처해지자 가족들을 도시에 남겨 두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뒤부터 마음은 홀가분해 졌다.

고향으로 돌아간 광순씨는 빈집을 하나 골라 퇴직금으로 ‘내 집’을 마련해 안착한 뒤 문패부터 만들어 붙였다. 꿈에도 그리던 ‘내 집’이요, 자신만의 영역을 가진 것에 대한 기쁨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날부터 광순씨는 잠들지 않은 시간에는 늘 집 안팎을 닦고 쓸고, 허술한 곳이 있으면 덧대고 고치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는 새 수십 년 가까이 비어 있던 낡고 허름했던 집은 완전히 새집으로 환골탈태했다. 어느새 본체는 물론 누가 찾아오더라도 너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사랑채도 그럴 듯하게 모양새를 갖추었다. 여름이나 봄과 가을로 느긋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편히 쉴 수 있는 자그마한 정자도 하나 세워졌다. 마당에는 잔디를 심어 고대광실 부럽지 않게 꾸몄으며, 담장은 넉넉하게 흙벽돌로 높이 쌓아 올렸다. 뒷마당은 깊게 갈아서 배추며 상추, 파는 물론 심지어 감자, 고구마까지 혼자서는 얼마든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는 심을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서너 해 동안 집 안팎을 가꾸며 삶의 터전을 닦고 고치는데 보냈던 광순씨는 그 다음 해부터 뒷집을 탐내기 시작했다. 빈집으로 비어있기는 했으나 도시에 나가 있는, 욕심 많은 주인이 워낙 비싼 값을 요구해서 생각에서조차 지웠던 것이지만 뒷집을 사들이고 싶은 욕망은 늘 꿈틀거리며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던 것이다. 집 옆의 개울도 마찬가지였다. 산 깊고 물 많은 곳이었던지라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어느 때 한번 마른 적 없이 늘 물줄기가 흘렀던 개울이다. 혼자서 조용히 방안에 있을 때면 돌 위를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는 노랫소리도 되고, 멀리서 찾아온 듯한 말동무도 되어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담장을 개울 옆으로 옮기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개울 바로 옆은 논두렁이어서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비어 있는 뒷집도,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도 담장 안에 넣을 수 없어 ‘그림의 떡’처럼 두고만 보는 것이 여간 애통한 일이 아니었던 광순씨는 안달이 나서 실성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산업체들이 같은 업종간 담장 허물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선도업체의 경우 매출실적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가 하면 1위 쟁탈전이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이로써 산업체에서 불고 있는 담장 허물기 바람은 고객에게도 좋고, 업체도 좋은 일석이조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광순씨가 신문을 들추다가 지끈지끈 아픈 머리를 감싸고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비어 있는 뒷집과 개울을 담장 안으로 넣으려고 골몰하다가는 가만히 앉아서 시름시름 앓은 뒤에 죽을 것만 같아 바람이라도 쏘일 겸해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뒷집과 개울 반대편으로 무작정 걷다가 앞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도 없는 산을 한참동안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아도, 옆을 둘러보아도, 앞을 주시해도 막아서는 것이 없었다. 그저 오르락내리락, 발걸음만 내디디면 나아갈 수 있는 높낮이만 있을 뿐이었다. 첫 번째 낮은 봉우리를 하나 넘고 두 번째 높은 봉우리를 넘어서면서 광순씨는 집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임금이 사는 고대광실도 부럽지 않았던 집이 하나의 점처럼 보일락 말락했다. 담장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을 했던 뒷집과 개울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집과 한 덩어리가 되어 경계조차 구분되지 않아다.

광순씨는 서둘러 산을 내려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벌에 쏘이기라도 한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산에서 내려와 집에 도착한 광순씨는 담장을 허물어내기 시작했다. 더 높고, 견고하게 쌓으려 했던 담장을 스스로 허물어낸 것이다. 본채와 사랑채, 정자를 사방으로 에워싸고 성처럼 둘러쳐져 있던 담장이 허물어지자 뒷집은 별채처럼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디딤돌까지 가져다 놓고 발돋움을 하면서 담장 밖으로 내다보며 애를 태웠던 개울은 본채에 앉아서도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답답했던 마음을 안고 터덜터덜 올라갔다가 내달리다시피 내려왔던, 첩첩이 둘러쳐져 있던 산봉우리도 손에 잡힐 듯이 집 안마당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산도, 들도, 동네도 모두 ‘내 집’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