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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즐기자

편집부   
입력 : 2016-05-02  | 수정 :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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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많은 인연과 만난다. 좋은 만남도 있고 나쁜 만남도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면 지평선이 되고 하늘과 바다가 만나면 수평선이 된다. 산과 나무가 만나면 숲이 되고 산과 물이 만나면 계곡이 된다. 물이 수증기가 되기도 얼음이 되기도, 구름이 되기도 눈이 되기도 한다.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나고 자라면서 형제를 만나고 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를 만나고 직장에 다니면서 직장 동료를 만난다. 공간과의 인연이다. 하루를 만나고 한 달을 만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나듯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인생의 사계절을 만난다. 시간과의 인연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과 헤어진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떠나고, 직장을 떠나고, 형제와 부모를 떠나고,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3월은 입학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졸업이 있다. 인생은 인연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고등학교까지의 졸업은 그래도 입학이 예약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학할 곳이 없는 대학 졸업자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년실업자란 이름으로.

만나야 하는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을 만나야 하는 고통을 우리는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고통은 ‘생의 고통’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 중 제일은 ‘홀로서기’의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이다. 경제적으로 부모를 떠나 한 인격으로 독립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취직과 결혼은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또 다른 이름으로 부모가 되어야 하는 새로운 만남의 출발점이다.

설사 취직을 하여도 새로운 가정을 만들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 ‘삼포세대’ 즉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혼자 사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을 빗댄 말이다. ‘1인 세대’라고도 한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나를 키워준 부모에게 진 빚을 부모에게 다 갚지 못하고 자식에게 갚는다.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삼포세대’란 말에는 부모에게 진 빚을 갚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물며 부모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 부모의 곁을 떠났다가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연어족’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이 시대를 반영하는 말들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즐기라.’라는 말이 있다. 직장이라는 공간과의 만남과 헤어짐도 인연이 있다. 고통과 즐거움은 생각의 차이다. 매일 부모의 성화로 한라산을 오르는 약초꾼은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주도에 관광을 와서 한라산을 오르는 사람은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전자는 돈을 벌고 후자는 돈을 쓰면서 말이다. ‘직장 인연’과 만남을 기다리는 것도 지혜다. 심마니가 백 년 자란 산삼을 기다리듯, 일 년을 하루처럼 생각하면서.

겨울인가 싶더니 봄이다. 나의 봄날은 아버지의 흔적으로 남아 있고, 나의 여름은 서가에 읽은 책들로 남아 있고, 나의 가을은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흘린 땀으로 남아 있다. 나는 초등학교를 아버지의 전근으로 열 세 군데를 다녔고 이사를 하는 어머니는 고통이었지만 나는 전학을 가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나의 봄날이다. 중, 고등, 대학교 시험에서 일차에 합격한 적이 없다. 매번 낙방이었고 이차 신세였다. 나의 여름날이다. 30년의 직장생활을 마쳤다. 나의 가을날도 끝이 났다. 찬바람이 불고 눈도 올 것이다. 나의 겨울이다.

나의 겨울을 따뜻한 생각으로 맞이하리라. 늙는 것도 고통이라지만 그 고통도 즐거움으로 생각하리라. 피할 수 없는 인연이라면 즐길 것이다.

김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