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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삶

편집부   
입력 : 2016-03-02  | 수정 :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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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品)으로 끝나는 단어를 살펴보면 제품(製品), 정품(正品), 진품(眞品), 성품(性品),  명품(名品), 작품(作品) 등이 있다. 
그중에서 작품(作品)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글, 그림, 음악, 조각 등과 같은 예술분야에만 국한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作品)은 기계가 만든 물건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 만든 온전한 물건이자 진짜 물건이며, 사람의 성질과 됨됨이며, 그 무엇보다도 뛰어남을 의미한다.

한 방송국의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하였다. 두 명의 여성 참가자가 연탄곡(두 사람이 같이 연주하는 것)을 연주하였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마치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손가락이 디지털 피아노 건반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어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오디션이 끝나자, 한 심사위원이 입을 열지 못한 채 잠시 넋 나간 표정을 짓고는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오늘 놀라운 작품을 보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는 그는 볼펜을 끄집어낸다.
“볼펜이라는 제품은 기능을 중점으로 만든 것이라면 작품은 사람의 열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두 참가자는 그런 진정한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심사위원의 말을 듣는 순간, 진실된 사람이 열정적인 자세로 진심을 다하여 올곧게 삶을 추구하는 그 자체가 바로 기계가 만든 세계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아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막내아들이 학교교육과정 발표회에서 교실에 전시하였던 그림을 집으로 가져왔고 아들의 성화에 그림을 보게 되었다.
4학년 아들의 눈에 비친 그림의 세계는 어른들이 모르는 동심 가득한 마음의 세계이자 어른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마법과도 같았다. 

그림 속에는 학교에서 현관문으로 쏜살같이 달려드는 역동적인 자신의 다리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더욱더 정직하고 진솔하게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집에서 기르는 애견이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이해 주기 위해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달려 나오는 애견의 다리 그림은 내가 보기에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 못지않은 거의 압권에 가까웠다. 

아들의 그림작품은 놀랍고도 감동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입장에서 초등학생 아들의 그림을 보면서 그동안 남몰래 가족의 온기를 그리워 하면서 혼자 힘들었을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음에 괜히 안쓰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 아들은 학교생활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가까운 공부방에 가서 몇 시간 동안 또 다시 공부하다가 오후 늦게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집에 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때  가족이라는 둥지의 냄새를 그리워하면서 가정에 들어설 때 아무도 자기를 기쁘게 반겨주고 위로해 주는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았을 때 느꼈을 허탈감과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부모로서 진심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아들의 그림이 눈가에 작은 이슬을 맺게 했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그렇게 하나하나 공들여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미완의 자아에서 출발하여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카오스 세상을 무수히 관찰하고 많은 경험과 고뇌와 사색을 통해 삶에 대한 혜안(慧眼)을 얻고 마침내 성찰의 심안(心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김용태/심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