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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어, 쟤 공주잖아! ”

편집부   
입력 : 2016-03-02  | 수정 :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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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수없이 많은 말들을 반복하고, 말이 끝나고 시작되는 지점에서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정보 심지어는 그 사람 삶 전체의 역사와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종종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가 항상 맑고, 깊고, 향기로우면, 생각 또 한 맑고, 깊고, 고요할 것이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에 인품도 함께 담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 누군가가 “몰랐어, 쟤 공주잖아!”라고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불쑥 내뱉은 한 마디가 한나라 공주에게 “몰랐어, 쟤 공주잖아!”라는 말의 의미와 아주 조용하고 소심한 사람에게 “몰랐어, 쟤 공주잖아!”라는 말의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전자의 말의 의미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말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들릴 수 있다. 후자의 말이 어찌 보면 타인에게는 고생을 모르고 자라 어린아이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생각과 행동이 사치스럽고 미숙하다쯤으로 치부되는 그래서 비아냥거림이나 조롱하는 말투로 혹시 들리거나 전달되어 깊은 상처로 남았던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말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것은 아닐까?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짓지도 하고 천 냥 빚을 갚기도 한다. 한 치 혀 속에 도끼가 있다”는 그 말뜻 속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 속에 감춰진 깊은 뜻은 언젠가는 말이 때가 되면 싹을 틔울 준비를 충실히 하고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나는 교화의 현장에서 보살님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다. 보살님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선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망어가 되어 고통 속에서 불행한 나날들을 꾸려가는 무서운 말이 되어, 결국은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자신 스스로를 해치는 경우를 보면서 말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심인당이라는 부처님이 인증하신 거룩한 장소에서 마음 읽고 또 읽으면서 그리하여 궁극에는 나 자신이 스스로가 부처임을 깨닫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진언 삼밀수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재물 없이도 복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도 부처님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어느 날 가난한 한 소년이 부처님을 찾아와 하소연을 한다. “부처님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미천하고 가난하여 보시 할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가난에서 벗어나 베풀며 살아 갈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하자 부처님께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재물 없이도 보시할 수 있는 일곱가지 방법이 있느니라. 그 첫째가 항상 환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밝은 표정을 지어 상대에게 편안한 마음이 들도록 하는 화안시(和顔施)이며, 둘째는 남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써 용기와 희망을 주는 애어시(愛語施)이며, 셋째는 사랑스럽고 자비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자안시(慈顔施)이며, 넷째는 몸으로 베풀고 봉사하는 사신시(捨身施)이며, 다섯째는 다른 사람의 괴로움을 염려하고 걱정하여 그들의 행복을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고 축원하는 심려시(心慮施)이며, 여섯째는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상좌시(上座施)이며, 일곱 번째는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는 잠자리와 쉴 수 있도록 베풀고 배려하는 방사시(房舍施)이니라” 부처님 말씀처럼 화안시, 애어시, 자안시 이 셋은 각별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재물 없이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복 짓는 방법이다. 이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묵언수행을 하고 진언수행을 하겠는가? 우리는 말하는 연습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국회의원을 직접 뽑아야 한다. 적어도 타인을 헐뜯고 비방하고 인신공격을 부끄럼 없이 서슴지 않고 일삼은 언어테러리스트들 그래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적어도 뽑지 말아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는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인 정희성은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밥을 굶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시인들이 정치꾼보다 많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그는 자기 시에서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이유를 그렇게 읊조리고 있다. 어린아이가 되어 가장 순수한 말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문수동자의 게송처럼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 교화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