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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되어야 할 최상의 서원

편집부   
입력 : 2015-12-23  | 수정 :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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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간 사람은 나무는 보지만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나무를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인과의 이치가 드러나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경험이 너무 짧습니다. 안목의 스케일이 너무 작습니다. 그러하기에 좀 더 두고 지켜봐야 합니다. 섣불리 판단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삶 속에서 인과의 현현을 보기 힘든 이유는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족이든 나아가서 국가든 내가 속한 공동체와 분리된 개인만을 놓고 고려하기에 인과의 이치를 명명백백하게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시각이 너무 편협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부처님이 우리 삶 속에 보여주는 법문은 개인만 봐서는 알 수 없고, 당대에 다 알 수 없고, 몇 대를 두고 지켜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복을 짓는 것이든, 원력의 뜻을 이루는 것이든 당대에 그것을 다 볼 수 없습니다.

같은 가정이라도 자녀와 부모의 생각이 모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녀는 자신이 진정 가고 싶은 길, 정녕 하고픈 일에 대하여 생각하지만, 부모는 자녀가 남보다 더 출세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본래 마음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높아지는 것을 싫어하겠습니까? 세상의 어느 누구도 누군가 나보다 잘났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할 사람이 없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당신 자식이 당신보다 낫네.’ 이 말은 다 좋아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마음에 새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자녀에 대해서 구할 것이 있다면 진리의 복전을 통해 구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보다 우리의 자녀를 여법하게 도와주실 분은 없습니다. 자녀에 대한 염려를, 자녀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서원을 부처님께 드러내 밝히는 모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만 유념할 것은 어느 부모도 자녀가 어떻게 되는 것이 잘되는 것인지를 다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는 자나 깨나 자식들 생각뿐일 것입니다. 자녀에 대해서 많은 꿈과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성애로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이 잘되는 것인지, 그 최적의 길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이 걸어야 할 최적의 인생행로와 부모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보여주는 베스트와 중생이 생각하는 베스트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일단 불공정진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길이 옳은 방향인지 그른 방향인지 살피기 위해서 불공정진을 통해 먼저 지혜를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정진하다 보면 우리의 관점의 외연이 넓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부처님께서 우리를 깨치게 만드는 것을 증득하게 됩니다. 우리의 서원이 달라지는 것을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강요해서 송아지를 끌고 가듯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원력과 정진을 통해 환희한 마음으로 진리를 실천하여 내증하게 만드는 위신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부처님을 만납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이 몇 차례는 법당에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거기까지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을 마음으로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 가르침을 가슴에 품지도 않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의 인생에 아무런 중요성을 점하지 못합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인연 중 하나로 취급되고, 그 만남은 피상적인 것이 됩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인생에 자국도 남기지 않습니다.

부처님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만 있지 맙시다. 악수 한 번 하고 헤어지듯 하지 맙시다. 차 한 잔 나누는 사이 정도로 끝내지 맙시다. 부처님이 증득하신 진리 증득의 법열을 함께 나눕시다. 고민과 걱정, 무거운 짐을 부처님과 나누고 맡깁시다.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부처님처럼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상대방이 가지고 오는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기뻐합니다. 부처님이 들고 오시는 선물 꾸러미보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 진리 그 자체입니다. 기복 신행이란 본심을 찾아 지혜로워지는 진리 이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따르는 목적도 그분이 좋은 것을 주실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리다움을 인정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부처님과 함께 함을 통해 자성부처님의 현현이 서원의 목적이 되고, 그 실천을 통해 법열을 성취하기를 서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참된 자비심을 일으키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경전에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부처님의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여실지자심하는 복된 존재’가 되길 서원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생명을 살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따르는 우리도 부처님께서 서원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진언행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인당 교적부에 이름을 적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몇 차례의 불사에 동참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진언행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삶의 순간에 부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작불행(佛作佛行)의 서원이 퇴전없이 상속되는 부처님의 진실한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서원합니다.

수각 정사/밀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