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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658호)

편집부   
입력 : 2015-12-17  | 수정 :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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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행문화 활성화 되길

참으로 오랜 시간 만에 이루어지는 창작 서원가 발표회다. 종교에 있어 소리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참으로 크다. 특히 진언수행을 하는 우리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소리를 생각하고 소리를 다루는 일에는 소홀하다. 더욱이 종교의식에는 소리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소리에 의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고 번뇌가 일어나기도 한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정해진 공간의 시스템이나 장비는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소리의 중요성에 비해 여건이 매우 좋지 않다. 소리가 좋다고 설법이 더 좋아지고 교화를 더 잘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소리는 무조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소리는 사람 간의 소통을 하게 하고 병든 마음을 치유하게도 한다. 요즈음은 세상의 소통이 우리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컴퓨터가 나오고 그것이 생활 속에 들어오면서부터 직접적인 소리로 하는 소통보다, 문자나 여러 가지 부호 등으로 소통의 방법이 달라졌다. 더욱이 인터넷이 발전되면서부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다란 벽이 생긴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튼,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병든 마음을 정화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삶의 좋은 매개체이고 활력소이다. 이제부터라도 소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번 창작 서원가 경연대회가 계기가 되어 심인당 마다 노래하는 분위기가 일어났으면 한다. 노래하는 분위기는 슬프고 부정적인 곳에서는 생겨나기 어렵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함이 있을 때 저절로 노래가 나오는 법이다.

자연스럽게 콧노래가 나오는 신행의 풍토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개인이든 종단이든 소리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불사가 이루어지기를 두 손 모아 서원해본다. 

생활 속에 살아있는 불교가 되기를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조계사 피신과 관련된 일이 많은 우려 속에 더욱 크게 확대되지 않고 해결이 되었다. 다행스럽다고 말하지만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다. 경찰 공권력이 관음전 앞까지 밀고 들어오고 강제적 해결을 시도했다.

그것은 불교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불교의 자존심을 건드린 일이었다. 불법(不法)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느리지만,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을 짓밟은 것이었다.

사회와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일은 반드시 단죄되어야 마땅하지만, 불화와 투쟁의 응어리를 풀어내려는 종교의 순수한 역할마저 무시하고 권력과 힘의 논리로만 국가와 사회를 지배한다면 그것은 분명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대중과 생활 속에 살아 움직이는 불교로서 거듭나야 한다. 정(靜)적인 수행만을 강조하며 관념상(觀念相)의 자비와 공생(共生)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활동하는 불교, 활동하는 삶이 불교라는 것을 대중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불교로 거듭나야 한다.

종단과 종파를 넘어 생활 속의 불교, 불교가 대중 속에 생활화 되도록 모두가 용맹정진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가 불교를 의지하고 불교가 사회를 이끌어 갈 때, 감히 공권력이 관음전으로 대웅전으로 들이닥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