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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에 어두워서

편집부   
입력 : 2015-12-17  | 수정 :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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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음에 와 닿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자신을 규정하지 말라. 규정하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남들이 당신을 규정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한계짓고 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교육이 하는 일이란 게 온갖 검사나 시험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작업 아닌가. 학문은 또 온갖 대상을 규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말이다.

일상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번역서는 우리나라에 칭찬 열풍을 일으키면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원서 제목이 고래가 해냈어!: 긍정적 관계의 힘이었고 초기 제목으로 책이 팔리지 않자 칭찬모드로 바꿔 성공을 거두었다. ‘긍정적 관계보다는 칭찬처럼 규정하는 어휘에 사람들이 호응을 한 것이다.

유명한 시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에서 이름도 곧 규정하기 아닌가.

한시라도 중단하면 죽을 듯이 자신과 남을 이러니저러니 규정들을 하고 있는데 그 일을 그만둘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하니 위 글귀는 예사말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참된 (영적) 교사는 진리로부터 당신을 갈라놓는 온갖 말들을 제거하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어록은 가르치고 있다.

어록의 주인공 에크하르트 톨레는 독특한 이력과 함께 현재 활동 중인 영적 지도자들 중 대중성으로는 세계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사람이다. 가정불화와 따돌림으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몇 번 시도했던 20대 말, 극적인 전환을 맞는다. 절망적인 두려움 속에서 맞이한 밤, 잠자리에서 문득 나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둘이란 말인가? 어느 쪽이 진짜 나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답을 얻으면서 아득한 시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맞이한 아침은 햇살부터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다. “너무나 익숙한 방이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공간이 거기 있었다.

이후 대학원 학업도 그만두고 직업도 없이 깊은 환희 상태2년을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에게는 무책임하고 얼빠진 사람이었다. 마음을 다룬 책들이 새롭게 이해되고 영적 교사들과 교류하고 나서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대학생들 상담 일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그를 찾게 되었고 우연한 모임에서 영적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톨레의 책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접하다가 문득 법회에서 늘 암송하는 구절인 무아에 어두워서가 떠올랐다. 이 모든 이야기가 그 구절로 수렴됨을 느끼고는 웃음이 나왔다. 누구는 그 구절을 모르고도 깨달음을 얻었고 누구는 시시때때로 되뇌임에도 늘 그 자리이다.

신재영 교수/위덕대 교육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