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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소중한 현재

편집부   
입력 : 2015-11-16  | 수정 :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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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도인 스무 살 아들이 최근 꾸고 있는 꿈은 세계 일주입니다. 다른 세상, 다른 패러다임, 다른 이야기, 다른 시공간과 대면하고 싶은 게지요. 꿈이 명품 자동차나 로또 1등 당첨이 아닌 것에 살짝 안도하면서도 무언가가 시큰시큰 시리게 올라오는 게 있었습니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말입니다. 한 때, 제 꿈이기도 했거든요. 세계 일주를 하면서 집시처럼 살다가 일찍 죽어버리겠다고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돌이켜 보니 말뿐이었어요. 세상이 우습고 만만해서 아무 데서나 그리고 아무렇게나 성냥불을 지익, 그어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꿈만큼은 이상하게도 겁쟁이였습니다. 꿈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려웠던 가정환경 탓을 하면서 꿈보다는 돈을 쫓아 살아왔습니다. 따지고 보니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고 말입니다.

모처럼 아들과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정말 하고 싶다면 미루지 말고 시작해! 비행기 티켓 값하고 비상금 정도만 마련하면 무조건 가는 거야! 좀 더 모아서......, 불안하니까 조금만 더 모아서......, 그러다 보면 여행을 하려고 모은 돈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버리고 말아. 결국, 영영 못 가고 말테지! 꿈은 용기를 내어 실행하면 현실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꿈도 망가지고 그 꿈을 꾸었던 사람도 망가져. 이 미련한 엄마처럼 말이야.”
아들은 엄마의 촉촉한 눈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말씀 알아요! 그런데 난 그런 미련한 엄마가 좋아요. 그리고 엄마가 정말 멋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엄마 말씀처럼 제가 먼저 해보고 괜찮으면 같이 가요, 우리! 엄마랑 같이 가면 정말 재밌을 거 같아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식당일을 하면서 단순하게 달아가고 있는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해 주며 위로해 주는 아들을 가슴 속 깊이 담으면서 저는 시큰시큰 시리게 올라오던 일종의 ‘구토’ 같은 것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더 빠르게 마음을 채울 터이고, 그래서 가슴이 많이 아플 것이고, 그러므로 아주 작은 바람 소리에도 멍이 들어 방황할 나이일 텐데도 불구하고 불평 한마디 없는 스무 살 아들이 도리어 못난 어미를 위로합니다. 힘이 되는 말을 해 줍니다. 참 대견하지요?

저녁상을 보려 장에 다녀오는 길에 빵집에 들렀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마카롱을 몇 개 집어 드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저녁상을 물리고 따뜻한 차와 함께 주면 아들이 활짝 웃겠지요? 그 환한 미소를 제가 어디 가서 볼 수 있겠습니까? 꿈보다 소중한 현재를 새삼 끌어안아 봅니다. 어쩌면 나름 잘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들 말대로 제가 정말 멋진 사람인지도 모르고요.^^

이연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