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0

편집부   
입력 : 2015-10-15  | 수정 :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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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본말

"농사짓는 사람이 농장보다 집을 크게 지으면 망하게 되니 이것은 본말(本末)을 세우지 못한 까닭이다. 아들딸을 생각함에도 마찬가지이니 출가한 딸을 너무 생각함도 그와 같다. 본(本)으로써 말(末)을 바룬다는 것은 안에서 밖으로 바루는 것이니 마음을 고쳐 눈 귀 코 혀 몸을 바르게 하며 하나로써 열을 바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로 바루는 것이며 며느리로부터 시어머니로 가는 길은 난행(難行)이다. 그러므로 육바라밀의 길로 가는 것이 정도이며 가르침의 중심이 된다."('실행론' 제2편 제8장 제2절)

무지개를 기다리며…

앙증맞은 굴착기의 몸놀림은 경쾌했다. 위에 올라앉아 탄 사람이 기계보다 더 커 보일 정도로 굴착기는 크기가 작아 장난감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 그 광경을 본 방문자들은 누구나 웃음부터 터트렸다.
“이래 봬도 이 놈이 힘 하나는 끝내줍니다. 제가 다루기에도 안성맞춤이고요.”
굴착기 위에 올라앉아 운전을 하다가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시동을 끄고 집 안마당으로 내려선 한 사장은 굴착기 자랑으로 너스레부터 떨었다.

100여 평은 될법한 집 안마당 가장자리에는 횟가루로 한반도 형상을 그린 흰 선이 그어져 있었다. 흰 선을 경계로 도별로 영역을 나눈 곳에는 각종 구조물들로 반 정도가 채워져 있었다. 구조물 가운데는 건물도 있고, 동물형상을 한 것도 있다. 나무와 꽃들로 장식된 정원도 있으며 수목은 물론 연꽃이 화려하게 핀 연못까지 갖추어져 있다.

“저것은 뭐예요?”
방문자 중 모자를 눌러쓰고 스카프를 두른 한 여인이 굴착기가 멈춰서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봉긋하게 솟은 산봉우리 같기도 하고, 간격을 두고 두 개가 나란히 솟아올라 있어 마이산 봉우리를 연상하게도 했다.

“동굴을 만들고 있습니다. 극락과 지옥동굴 말입니다. 오른쪽은 극락동굴이고, 왼쪽은 지옥동굴입니다. 지금 입구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극락이 됐건, 지옥이 됐건 각 단계를 거쳐서 동굴 중앙에 이르면 만나도록 만듭니다. 궁극적으로는 극락이든, 지옥이든 같은 곳이거든요. 누구나 자기가 짓고, 심은 대로 받게 되는 인과응보이기는 하지만,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스스로 지옥도 만들고, 극락도 만드는 이치거든요. 지금 이 순간 근심걱정 없이 마음이 편안하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으면 그 자리가 극락 아닌가요? 여사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극락에 계시지요.”
“언제 완성 돼요?”
“이, 삼일 후면 다됩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축소된 모형이라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차를 한 잔 하면서 극락동굴과 지옥동굴 안을 어떻게 꾸밀지 구상해 놓은 설계도를 보여드릴게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구조물이고, 독특한 테마파크가 될 것입니다. 보시고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허허.”

한 사장이 굴착기를 부지런히 움직여 가면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100분의 1로 축소시킨 모형 힐링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작업이다. 크기가 작은 미니어처이기는 하나 재료를 사들여 모형을 만들고, 땅을 일구는 자금도 적은 돈은 아니다. 하나 그쯤이야 눈곱만큼의 걱정도 되지 않았다. 한 사장이 그동안 모아온 자금으로 평생의 소원이었던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머릿속 구상을 끄집어내 학생들이 쓰는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그려서 주변의 아는 몇 사람에게 보여주자 반응이 뜨거웠다. 첫 반응은 그렇게 좋았으나 이내 시큰둥해 했다. 구상은 좋은데 구체적인 설계도가 있어야 사람들의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혼자서 할 일은 아니고 투자자를 모아야 할 일이라면 더더욱 필요하고 최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훈수를 두었다. 한 사장은 당장 설계사무소를 찾아가 스케치북에 있는 그림을 보여주며 구상을 설명하고 설계를 의뢰했다. 설계도가 완성되자 설계사는 3D 조감도까지 만들어야 완성품이 될 것이라는 말을 슬그머니 끄집어냈다. 한 사장은 그 자리에서 조감도까지 의뢰했다. 조감도가 완성되자 한 사장은 기대감에 들떠 만면에 미소를 한껏 피워 올리며 집 안마당에 구조물을 세우고 조감도를 번듯하게 내걸었다. 마침 방문객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 사장은 기대에 부풀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가면서 테마파크를 조성했을 때의 수익성을 장담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조감도를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은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다는 생각들을 한 마디씩 툭툭 내뱉었다. 그 말끝에 한 사장은 눈대중으로 마당을 재단하고 굴착기부터 장만할 계획을 세웠다.

조감도가 내 걸리고, 모형의 건축물과 구조물, 동식물들이 하나, 둘씩 집 안마당에 자리를 잡아 들어서면서 테마파크는 그럴듯하게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절반 정도가 완성되긴 했지만 전체적인 모양을 갖추는데도 불과 한달 여가 채 안 걸릴 정도로 속도감이 났다. 하루빨리 일을 마치고 완성된 작품을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굴착기 위에 올라앉는 한 사장의 급한 성정 때문에 미니어처 테마파크는 예상되는 한달 보다도 훨씬 더 일찍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한 사장이 테마파크에 열을 올렸던 것은 다른 여느 테마파크와 차별화를 시켜줄, 주인공격인 조각작품 하나가 미술대전에서 입상작으로 선정되고 나서였다. 그 소식을 알고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던 한 업체에서 거액을 걸고 독점하겠다며 한정생산을 제안해 오면서부터다. 그 제안을 받고 나서 한 사장은 자신이 테마파크를 만들어 특수를 누리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다. 계산 빠르고 세속물정에 밝은 한 사장으로서야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야망이었다.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곳에서 선뜻 제의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증명해주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이 한 사장을 충동한 것이다.

굴착기로 땅을 헤집는 공사가 시작되면서 전단지가 만들어지고, 보름 여간 길거리를 돌며 전단지를 나누어 줄 인부도 채용됐다. 테마파크 직원이 된 것처럼 그들은 모두 자기 일 마냥 열심히 뛰었다. 땅에서는 굴착기 움직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길거리를 돌며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인부들까지 집안을 번잡하게 오가면서 한 사장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다. 방문자들도 꾸준히 이어지기는 했지만 투자신청서는 한 장도 쓰여지지 않았다.

무지갯빛 테마파크에 먹구름을 드리운 것은 전단지를 돌리던 인부들부터였다. 테마파크가 조성되면 일자리를 보장받는다는 밀약 속에 열심히 뛰었던 인부들이 열흘씩 끊어서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던 첫 번째 수당이 손에 쥐어지지 않자 길거리로 나가는 대신 굴착기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한 사장은 그동안의 약속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며 대부업체로부터 긴급자금을 빌려 그들의 임금을 청산하고 내쫓아버렸다.

"사장님 혼자 공사를 하시나봐요."
“투자자가 생기면 그들이 모두 한 식구가 될텐데요, 뭘. 그때는 식구가 많아지겠지요. 허허.”
“구경 잘 했습니다.”
“한 달 뒤에 오시면 완성된 테마파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 꼭 들러주시죠. 빨리 완성해 놓겠습니다.”
고급승용차를 타고 대답 없이 집 안마당을 빠져나가는 일행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한 사장은 폴폴 날리는 먼지를 고스란히 덮어쓰고서는 움직임 없이 서있는 굴착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지개는 한 줄기 비가 쏟아지고 난 뒤에 나타나기에……. 한 사장은 흙먼지를 이고 땅바닥을 자리 삼아 집 안마당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늘은 쨍쨍하게 맑기만 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