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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공감(共感)하는 여백(餘白)

편집부   
입력 : 2015-10-15  | 수정 :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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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지는 여름의 기억 틈새로 시월의 향기가 스며들어 어느새 옷자락에 가을이 채색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풍요로움의 계절, 결실의 계절인 가을은 마음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왠지 잔잔한 마음의 아련함,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더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계절에 우리의 감정도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곤 합니다. 계절에 따라 생활의 모습이 변하고, 생활의 모습이 변하면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에도 변화가 옵니다.

깊은 산사에서 새벽에 울리는 범종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나요? 
깊은 산사의 범종의 울림에 여운이 퍼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여유롭고 편안하게 합니다. 아주 작고 여린 소리와 긴 침묵의 순간에 숨죽이는 더 큰 감정의 떨림을 느낄 수 있고, 가느다란 손가락의 미세한 동작 하나에서도 조그마한 떨림을 느끼며, 가슴을 저미는 느낌을 알 수 있는 우리의 감성은 내면에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인 ‘여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백(餘白)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종이 전체에서 그림이나 글씨 따위의 내용이 없이 비어 있는 부분,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백은 비어 있는 미완성 상태 같지만 그려진 것 이상의 가치를 이루며 보는 사람의 생각과 감성에 따라 채울 수도 있고 비울수도 있는 무한의 공간으로, 마음의 눈을 통해서 채우도록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건축가는 공간의 여백을 계획하고, 작곡가는 쉼표의 쓰임새를 고민한다면 우리 마음에도,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마음속에 여유로운 공간이 있어야 울림이 생기고, 울림을 통하여 더 많은 감동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쁜 일상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는 비워야 채울 수 있는 여백(餘白)의 공간에서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재충전의 시간, 즉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나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더 다양한 감정에 공감하고 자신의 내면 변화와 함께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수묵화나 산수화의 백미가 여백에 있듯이, 자신의 삶에 예의(禮儀)를 다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마음이 고운 사람은 여유롭게 느껴집니다. 자기가 남에게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찾아내게 하는, 지극히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에서 아름다움의 경지가 더욱 깊어지는 여백의 의미를 담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겠지요.

가득 차 있으면 담을 수 없듯이 비어 있지 않으면 채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것을 자꾸 늘려갈 게 아니라 되도록 많은 것을 내려놓고 비워야만, 힘이 들더라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채우려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최소한 후회 없이 우리의 삶을 즐기며 ‘변화’의 순간이 왔을 때 마음 편하고 가볍게 그 변화를 맞이하여 멋지게 나이 들어가며 그리운 가을처럼 될 수 있는 마음속 여백의 공간을 만들어 시월의 멋진 날을 그려볼까 합니다.

명선심인당 교화스승 심정도 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