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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脫盡)을 피하는 방편

편집부   
입력 : 2015-08-17  | 수정 :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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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집단에서 떨어져 낙오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따라 삽니다. 그리고 서로 앞에 서려고 경쟁합니다. 서로 앞에 서려고 밀어대기 때문에 삶의 발걸음이 빨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천천히 걸어도 될 것을 뛰며 삽니다. 그러면 모두가 허둥대며 따라 뜁니다.

왜 그렇게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길을 잘못 접어들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인생의 벼랑을 향하여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뛰기만 합니다. 축생조차 하지 않는 일을 천연덕스럽게 합니다.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사심에 전도되지 않고 본심을 일으켜 부처님의 진리를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뛴다고 무조건 뛰지 않고, 진리와 보조를 맞추며 뛰겠다고 서심결정 하는 것입니다. 진언행자는 뭇 사람들이 들고 뛰어도, 부처님이 그냥 걸으면 뛰는 세간 사람들 속에서도 여유 있게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세간 사람들이 유유자적하게 거들먹거리며 걸어가도 부처님이 뛰면 함께 따라 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습니다. 세간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현실과 사람에 파묻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진리와 자성본심을 부지부식간에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침내는 이리저리 허둥대며 세간 속에서 사람들과 어리석은 경쟁만 하며 밀고 밀리며 죽음의 달음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계화택(三界火宅), 화택삼거(火宅三車)라는 유명한 비유는 법화경에 근거합니다. 이 삼계화택은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탐심과 진심과 치심이 땔감이 돼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만든 현실인 것입니다. 여기서 장자가 아이들에게 선물한 흰소가 끄는 수레는 다름 아닌 우리의 참된 마음 즉 본심입니다. 본래의 마음, 깨끗한 마음, 탐진치 삼독에 물들지 않는 마음, 번뇌의 불꽃이 조금도 연기를 내지 않는 마음. 이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영원히 변치 않은 행복과 안락을 찾을 수 있는 겁니다.

진각성존께서는 삼계가 불난 집과 같은데 그 속에 머무르는 고통의 원인과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답을 제시하십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마음에 있다. 정진으로 깨쳐서 허물을 찾지 않고 부처님의 묘력을 얻고자 함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이 스스로 괴로울 뿐이다. 오직 보리심에 통달하면 일체법을 구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중생들은 삼계화택에서 끊임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이 고를 해탈하려면 보리를 구해야 한다. 보리심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내 마음 속에 있다. 우리의 몸은 색신이니 헛되고 거짓된 것이다. 그 가운데 헛되고 거짓된 생각이 일어났다 멸했다 하며 종종 악업을 짓는다. 어느덧 수명이 다해 사대가 각각 떠나고 한 줌의 재로 화 할 텐데 어찌 애착할 것인가. 영원한 내 것이 아니다. 생전에 수행한 진실한 불성은 영구 불생불멸이라 실답게 닦고 행하는 가운데 보리도 성불도 극락도 있다. <실행론 4-9-2>

세상이 혼돈하고 험악한 것은 우리의 마음에 삼독심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인데 이 삼독심만 제거하면 우리는 바로 부처와 똑같은 본심을 찾아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난 집에 있으면서도 불난 집인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벌어진 험악한 현실을 보면서도 자기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은 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난 집과 같은 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마음을 진정하는 길, 번뇌의 불꽃을 잠재우도록 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죠. 

세상에서의 덧없는 부귀영화만 화택이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가난과 고생과 시련도 화택입니다. 그런 화택들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무너집니다. 그러니 좋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힘들다고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진리대로 살게 되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삶에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됩니다. 풍족하면 풍족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잠시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잠깐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지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진언행자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마저도 바라보고 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건강한 신심과 서원력으로 사는 사람은 현실에 보이는 것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성공하고 부하다고 자랑하거나 거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냥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화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얻었지만 그것에 취하여 살지 않습니다. 그것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진리의 길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니 항상 환희하고 본분사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티를 내지 않습니다. 부해도 부한 티가 나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가난한 티가 나지 않습니다. 성공해도 성공한 사람의 티가 나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실패한 사람의 티 또한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진리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서조차 부처님의 티는 나지 않고 세간에 훈습된 티만 납니다. 성공하면 성공한 티, 실패하면 실패한 티. 부자에게서는 부자 티,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가난한 사람의 티가 팍팍 납니다. 그 티와 냄새를 풍기며 무명(無明)의 천길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합니다. 나와 타인과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능력을 계발하고 키워 제대로 보게 되면 올바른 이해가 생기며 나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올바른 수행을 통한 이해의 넓어진 지평이,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가를 명확히 알게 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게 되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밀각심인당 주교 수각 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