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돼 찾은 심인당 연주… 가슴 벅차다”

편집부   
입력 : 2015-08-17  | 수정 :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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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임재영 씨 밀각심인당서 “훈훈한 공연” 펼쳐

15년 유학서 익힌 첼로 연주 부모에게 처음 선보여
베르사유 C3M에서 첼로 Professeur로 9월 정식 채용
8월 19·20, 29일 고양아람누리, 예술의 전당서 공연
“어떤 공연 보다 떨리고 가슴 벅찬 무대였습니다.” 

서울 밀각심인당(주교 수각 정사)에서 8월 월초불공 회향일인 9일 의미 있고 훈훈한 연주회가 열렸다.
이날 신교들은 참소리합창단과 함께 공연한 첼리스트 임재영(불명 지인화) 씨의 아름다운 첼로 선율에 흠뻑 취해 더위도 잊었다. 현재 프랑스에서 첼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하는 그녀는 공연차 한국을 방문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교도들을 위해 음악을 선사했다.

첼로의 매력에 빠뜨린 임재영 씨는 종단 초기 밀각심인당에서 교화에 임한 법성 정사(18년 5월 53세 열반)의 외손녀이며 청신·묘정인 신교도의 딸이다.
법성(法性·김병국) 정사는 진기 12(1958)년 5월부터 진기 18(1964)년 5월까지 6년간 회당대종사를 곁에서 모시고 교화에 임했다. 중·고등학교를 일본에서 유학한 후 대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현풍소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기도 했다. 법성 정사는 진기 5(1951)년 6월 종단에 입문해 회당대종사 곁에서 초기 종단행정업무를 맡았다. 법난이 발생했을 당시 시련을 극복하는데 일조한 스승이기도 하다.

임재영 씨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밀각심인당에서 성인이 돼 다시 찾아와 신교도분들에게 제가 배운 음악을 선보이게 돼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며 “부모님에게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 보여드린다. 다른 곳이 아닌 부모님이 현재 신행 생활을 하시고 계시는 심인당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로부터 5살 때 피아노를 처음 접하게 됐으며 고등학교 1학년 첼로의 아름다운 소리에 반해 전공으로 선택한 이후 현재까지 한길만 바라보며 살아오고 있다.
남들보다 늦게 첼로를 전공으로 선택하고 예술고가 아닌 일반고에서 음악을 병행하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연습이었다고 한다.
임재영 씨는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죽을 힘을 다해 연습했던 것 같다”며 “처음 활을 잡았을 때는 줄긋기만 4시간을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 박경숙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활동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임재영 씨는 박경숙 선생에 대해 항상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 박경숙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가 힘든 연습 과정을 잊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임재영 씨는 “박경숙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에 저는 없었을 거에요. 음악을 배움에 있어 어머님 같으신 분이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박경숙 선생이 출강하는 계명대학교를 선택하게 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 동안은 투명 중인 외할머니 곁을 지키는 효심을 보이기도 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만인 2000년 9월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은 어렵게 결정한 일이었다. 당시 외할머니와 친척분의 죽음으로 부모님은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으신 상태여서 쉽게 허락하진 않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이 나중엔 허락을 해주었다.
임재영 씨는 “클래식 음악의 발생지인 곳에서 음악을 배워보고 싶고 또한 내 음악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유학의 길은 험난했다. 언어와 문화 등은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서 하나의 목표만을 생각했다. 음악적 수준을 향상하자는 것이었다. “내 수준이 굉장히 낮다는 걸 바로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매일 10시간씩 죽을 각오로 연습만 했다. 그때 정말 많이 배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한, 독일 유학 3년 동안 스스로 1,000일 불공을 정해 매일 1시간 염송과 불공 기간 중 좋아하는 한 가지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독일에서 흔히 마시는 음료를 마시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거나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정한 불공 시간과 규칙도 지켰다. 주위에서는 처음엔 이상한 아이 취급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이해해 주었다고 했다.

임재영 씨는 “부모님과 외할머니로부터 진각종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 독일 유학 3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도 음악과 삶에 대한 수많은 고민을 이겨 낼 수 있었던 부분도 연습과 함께 신행 생활의 힘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대 5년 생각을 하고 떠난 유학은 2003년 우연한 기회가 프랑스에서 찾아오게 됐다. 독일 유학 마지막 해이기도 하고 프랑스 작곡가에 대한 관심이 생길 시점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프랑스행을 결정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음악이 있어 행복하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학생활에 힘이 되어 준 것은 많은 지인과 함께 역시 신행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려움이나 시련이 오거나 따뜻하고 감동적인 소리를 내고 싶은 소망이 생길 때 항상 “내려놓자, 비우자, 버리자, 솔직해지자….”면서 마음공부(염송)를 했다고 한다.

혼자 있거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애국자가 되듯이 지신도 모르게 타국에서 진언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 그녀는 어려운 시기에 유학의 길에 오른 만큼 이를 악물고 후회 없이 공부해 음악적 성장을 꾀했다. 2006년 프랑스 파리 에꼴 노르말 연주자 과정과 2009년 베르사유 국립음악원 연주자 과정 및 디플롬 DEM(음악교사 학위)과정을 획득했다. 에꼴 노르말 학생 시절에는 프랑스 앙상블 대표팀으로 참가해 포르투갈 Porto에서 연주를 했으며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디플롬 DEM과정 디플롬 획득 후에는 보흑사헬로 교수의 조교로 활동하면서 각종 음악 페스티벌과 연주회에 초청돼 공연했으며 2009년부터 마울레 지역에 있는 시립음악학교에서 첼로 Professeur로 인재양성을 시작했다.

Orchestre SNCF(프랑스국철 오케스라) 수석단원이자 오페라 매시(Opera Massy) 객원단원으로 연주활동을 하는 그녀는 현재 세 학교를 출강하면서 동시에 베르사유 쌩껑땅이블린 대학원에서 바로크 첼로와 바로크 시대 음악학 공부를 겸하고 있으며 지금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입학 당시인 2012년 동양인은 그녀가 최초였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공부해온 그녀는 베르사유 C3M에서 첼로 Professeur로 정식 채용돼 오는 9월부터 후학들을 가르치게 됐다.
15년 유학생활을 하면서 독일에서 테크닉을 가르쳐준 마리오 데 세컨디 교수와 프랑스에서 음악을 그만둘까 생각했을 때 마음을 다잡아 준 똘리에르 교수, 바로크 음악에 관심을 갖게 해준 오펠리 가이야 교수, 현재 교습법 작업을 함께하고 있는 보흑사헬로 교수 등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자신이 없었을 정도로 좋은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유학생이란 신분에서 벗어나 프랑스에서 음악가로서의 새 삶을 살아가는 첼리스트 임재영 씨가 꿈꾸는 음악가로서의 목표는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딱딱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음악을 누구나 쉽게 접하고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연주를 통해서든 교육을 통해서든지 상관없다고 한다.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첼로가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하는 임재영 씨는 “어린이들이 쉽게 클래식을 공부할 수 있는 교습법을 마련해 한국과 프랑스 음악의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재영 씨는 8월 19, 20일 오후 7시 30분 경기도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코리아솔로이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참여해 공연하며, 8월 29일에는 오후 8시 예술의 전당에서는 앙상블 ‘같음’ 단원으로 참여해 슈베르트 ‘송어’(Die Forelle) 등 관객들에게 친숙한 클래식을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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